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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weet little kitty Mar 26. 2024

차곡차곡 쌓아가는 삶, 바이올린의 원리

악기는 애착인형과 비슷한 이행기 대상이라고 합니다.

바이올린을 배운 7년 정도의 시간, 피아노를 칠 줄 알고 음악을 좋아하니 바이올린도 곧잘 익힐 것이라는 저의 기대는 무참히 깨졌습니다. 바이올린은 설령 재능이 있다 해도, 단계별로 하나씩 밟아 오랜 시간 익히고 또 연습하지 않으면 터득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글을 쓰면서 바이올린을 배우는 과정을 정리하다 보니, 차곡차곡 쌓아가는 우리의 삶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계단이 아무리 많아도 하나씩 올라가는 방법뿐이듯, 바이올린을 배운다는 것은 한 계단씩 올라가는 과정이었습니다.


무엇보다 내 몸에 대해서 알아가는 과정이라는 선생님의 말씀이 기억에 남습니다. 무조건 나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표준의 방법을 배우되 나의 몸을 파악하고 거기에 맞게 변형시켜야 합니다. 머리로 생각하고 연습이라는 운동 출력 과정으로 익혀야 합니다.


대상관계이론가인 도널드 위니컷은 '참 좋은 어머니는 유아의 이행기 대상을 존중해야 한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이행기 대상(또는 중간대상, transitional object)이란 환상 속 엄마에서 현실 속 엄마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아이에게 필요한 위로의 아이템입니다. 엄마는 다 내 맘 같을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안 들어주는 것도 있고 계속 옆에 있어주지도 않아 내 맘 같지 않더라는 거. 그런데 애착인형은 언제나 내 곁에 둘 수 있으니 잠시나마 위로가 됩니다.


이때 엄마는 애착인형을 존중해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이 단계의 좌절감을 극복하고 넘어서 아이는 성장할 수 있습니다. 엄마가 아이로부터 낡은 애착인형을 빼앗고 새로운 인형을 주면, 아이는 엄마와 새 인형을 자신의 전능감을 뺏어간 두려운 대상으로 느끼고 자신감과 신뢰를 상실하게 됩니다. 1)


이행기 대상에는 1차 이행기 대상과 2차 이행기 대상이 있습니다. 1차 이행기 대상은 아직 현실과 환상을 명확히 구별하지 못하는 시기에 애착 인형을 껴안거나 쥐어뜯으면서 마음속에서 창조와 파괴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아이는 현실과 마음속을 오가며 전능감과  누립니다.


아이가 언어를 사용할 수 있는 시기가 되면 2차 이행기 대상과 상징 놀이를 통하여 생명력과 현실감을 느끼고 다른 사람들과 나눌 수도 있게 됩니다. 아이는 현실과 환상을 구별할 줄 알고, 나와 타인을 인식할 수 있게 되어 2차 이행기 대상을 내가 아닌 다른 대상으로 인식하게 됩니다. 내가 아닌 대상을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은 신뢰와 인정의 관계를 경험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1)  


엄마로부터 이행기 대상을 존중받아본 아이는 어른이 되어 상징을 사용하고 문화를 즐길  아는 사람으로 성장합니다. 바이올린을 비롯한 악기는 2차 이행기 대상의 특성을 잘 갖추고 있습니다. 내가 원할 때 곁에 있고, 연주할 있습니다. 대신 악기를 연주하려면 정해진 범위 내에서 규칙을 지키고 익혀가야겠지요. 타인과 함께 나눌 수 있는 영역도 존재합니다. 악기를 통해 상징적 의미를 표현하고 규칙과 사회, 상호작용을 배울 수 있습니다.


성인에게도 이행기 대상이 필요할까요? 성인이 되어도 어릴 때 포근하고 좋았던 대상다시 누리고 싶은 마음, 인생의 위기라고 느낄 때 무언가를 곁에 두고 의지하고픈 마음은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저에게 바이올린은 그렇게 소중한 이행기 대상입니다.


마지막으로 최근에 연습하고 있는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2악장의 앞부분을 올려봅니다. 2달 전 영상인데 지금은 조금 나아졌지만 아직 많이 다듬어야 합니다. 그동안 연재를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더 좋은 내용으로 찾아뵙겠습니다.




참고문헌


1. 최영민, <대상관계 이론을 중심으로 쉽게 쓴 정신분석이론>, 2010, 학지사


커버이미지 출처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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