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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weet little kitty Mar 11. 2024

발표회 때 너무 떨려요

수행불안과 인데놀

아마추어 연습생에게 발표회는 설레기도 하지만 두렵고 떨리는 경험이기도 합니다. 무대는 관객이 많든 적든 떨리고 경직되는 공간이니까요. 조명은 나에게 집중되고 관객석의 사람들은 모두 나만 쳐다보니, 평소와는 너무 다른 상황에 떨릴 수밖에 없습니다. 합주보다 독주는 더 많이 떨리기도 합니다. 프로 연주자들은 수많은 경험과 내공으로 떨지 않고 무대를 제압하는 것일까요? 아마추어와 프로의 차이는 단순한 실력 차이가 아니라 무대 위 불안을 다스리는 내면의 힘과 기술이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     

 

지난번 연주회 때 저희 학원에서 바이올린 연주자 한 분이 인데놀이라는 약을 가지고 와서 드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무대 위에서 차분해 보이는 그분의 모습을 보며, 저도 다음에는 인데놀을 먹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저는 그날 무대에서 손가락이 굳어서 잘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인데놀은 교감신경의 베타 수용체에 작용하여 긴장을 완화시켜 줍니다. 대개 심혈관질환, 갑상선 기능항진증의 증상 완화, 편두통 등에 쓰이기에 정신건강의학과 뿐 아니라 내과나 소아청소년과 등에서 처방해 오던 약입니다. 인데놀은 말초신경에만 작용하지 않고 뇌혈류장벽(blood-brain barrier)을 통과하여 중추신경에까지 작용할 수 있습니다.

    

수행불안이란 무대 위에서의 연주나 많은 사람 앞에서의 연설 등 떨릴 만한 상황에 불안이 생기는 현상을 말합니다. 물론 약간의 불안은 누구에게나 필요하고 건강한 것입니다. 그러나 매번 그로 인해 충분히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수행 자체를 두려워하게 된다면 도움이 될 방법을 생각해 보게 됩니다.     


수행불안을 다스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먼저 수행할 과제에 대해 충분히 준비해야 합니다. 불안은 위기에 앞서 몸이 보내는 신호이므로, 시험이나 공연이라는 위기에 대응한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그러니 불안을 이용하여 충분히 준비하는 것이 자연의 순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준비 기간 내에 충분한 연습이나 공부는 필수입니다.

둘째로, 최대한 당일의 상황과 비슷한 상황을 만들어 연습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시험 당일의 장소, 분위기에 미리 적응해 볼 수 있다면 가 보거나 이미지를 통해 상상해 보는 것도 준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험이라면 모의시험을 스스로 만들어서 풀어봅니다. 당일의 변수에 대해 미리 생각해 보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러면 돌발 상황에 대처할 여유도 생길 수 있습니다.

셋째로, 인데놀과 같이 떨림, 심박수 증가를 억제하는 약물을 복용할 수 있습니다. 도움이 되는 사람이 있고, 별로 도움 되지 않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충분한 준비와 시뮬레이션 없이 약만 복용하는 것은 크게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인데놀 10mg정, 성분명은 propranolol (출처:약학정보원)

인데놀은 천식, 만성폐쇄성폐질환, 서맥 환자에게 금기입니다. 기립성 저혈압이 심한 분도 조심하는 것이 좋습니다. 모두 베타수용체를 차단하면 안 되는 경우입니다. 질환이 없는 분도 약물이 심박수와 혈압을 낮추므로 일시적으로 어지러움 등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통상 10mg에서는 부작용이 잘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래도 처음 복용하시는 분들은 시험 당일보다는 며칠 전에 한 번 복용해 보고, 본인의 증상을 테스트해 보시기를 권합니다.     


저는 공연 하루 전에 약을 처방받았기에 미리 먹어보지는 못했고, 공연 1시간 전에 약을 복용했습니다. ‘저혈압이 오면 어쩌지 ‘ 걱정했는데 오히려 효과가 적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지난번 연주회 때보다는 덜 떨렸지만 떨림이 없는 것은 아니고, 내부에서 무언가 나를 진정시킨다는 느낌 정도였습니다. 인데놀을 처방받아간 사람들 중 복용하지 않은 사람의 비율이 제법 된다고 하니 이 약은 그저 우리 마음속의 든든한 보험이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니 너무 큰 효과를 기대하기보다는 스스로를 진정시킬 수 있는 힘을 만들어 가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긴장을 조절하고 스스로를 진정시킬 수 있는 힘은 어디서 올까요? 자기 심리학의 대가 하인즈 코헛은 긴장을 조절하고 스스로를 진정시킬 수 있는 힘은 이상화 부모 이마고로부터 온다고 하였습니다. 이상화 부모 이마고란 “엄마, 아빠는 뭐든 할 수 있는 존재고, 나는 그런 부모님의 일부예요.”라는 아이의 욕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린 시절 부모는 유아에게 크고 완벽하고 모든 것을 해결해 주는 존재였습니다. 성장하면서 점점 부모가 신처럼 전지전능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불안하고 힘들 때 부모에게 의지하고 ’ 괜찮다 ‘는 말을 듣고 싶어 합니다.


유아기에는 아이를 위험으로부터 지켜주는 것, 아이가 불안하고 두려워할 때 보듬고 진정시켜 주는 것,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 무엇인지 가르치고 한계를 지어주는 것 등이 모두 해당될 것입니다. 아이가 점차 성장해 가면 적당한 거리에서 어른의 역할을 해 주고, 불안할 때 기댈 수 있도록 버텨 주는 것이 모두 이상화 부모 이마고를 충족시켜 주는 부모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반복해서 경험한 아이는 성인이 되어 스스로 긴장을 조절하고 자신을 진정시킬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합니다.      


저는 다음번 공연에서 인데놀을 또 복용하게 될까요? 아직은 고민 중인데, 차라리 조금 쉬운 곡을 선택해서 부담을 덜어볼까 하는 마음도 듭니다. 인생도 무대 위 공연처럼 내가 조금씩 조절하고 만들어갈 수 있는 무대였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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