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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weet little kitty Mar 04. 2024

성인 바이올린 학원은 '학원인가, 아지트인가'

함께 한다는 것의 즐거움


최근 몇 년 사이 성인 전용 바이올린 학원이 많이 늘었습니다. 10년 전만 해도 바이올린 학원을 다니려고 하니 아이들 학원 밖에 없었는데, 최근 4-5년 사이 직장인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을 중심으로 성인 바이올린 학원이 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다니는 학원은 지하철 역에서 5분 거리이고, 직장인 유동인구가 많습니다. 자신의 취미에 시간과 비용을 아끼지 않는 분들은 학원에 와서 바이올린, 피아노, 첼로 등을 배웁니다. 저는 이전까지는 주로 개인 레슨을 받았습니다. 성인 학원에 와서 좋은 점은 레슨 시간이 아닐 때에도 학원에 와서 연습해도 되고, 간식을 먹으면서 다른 회원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고, 주기적으로 발표회가 있으며, 마음이 맞는 사람들끼리 합주모임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미하이 칙센트미하이의 책 '몰입의 즐거움'을 보면, 어떤 일에 몰입하기 위한 조건으로 첫째 너무 쉽지도 너무 어렵지도 않은 적절한 난이도일 것, 둘째 즉각적 피드백이 주어질 것, 셋째 구체적 목표가 있을 것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 의미로 본다면 바이올린을 배우는 데 있어 발표회나 합주는 단기 목표가 되고, 피드백이 주어지는 좋은 기회입니다. 선생님들은 이 점을 이용해서 회원들의 몰입을 유도하는 것 같습니다. 단기 목표 없이 배우는 곡은 지루한데, 이번에 발표회에서 연주하겠다고 마음 먹으면 연습이 잘 됩니다. 발표회에서 회원들과 선생님, 가족 친구 등 초대한 지인을 불러 연주를 하고 나면 우리는 프로가 아니기에 ‘얼마나 잘했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성장했는가’에 초점을 맞춥니다. 그간의 성장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나면 뿌듯함을 느낍니다.      


학원에 다니면 좋은 점이 또 있습니다. 학원에서는 취미가 같은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를 하고 함께 연주를 할 수 있습니다. 회사에서는 내가 선택하지 않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지만, 학원에서는 내가 마음 맞는 사람들을 골라 만남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그 만남은 강제적이지 않으며 내가 원하는 만큼 사람 간의 거리를 조절할 수 있는 느슨한 관계입니다. 집에서 가까운 거리에 느슨한 공동체가 있다는 것은 싱글 가구가 많아지고 개인의 삶이 중요시되는 시대에 적합한 사회 구조가 아닐까 합니다.    

  

아마추어 연습생이 실내악 합주 모임을 만들려면 자유롭게 모여 연습할 공간이 있어야 하고, 실력이 좋은 리더가 있어야 하며, 꾸준히 모임을 이어갈 만큼 열정적인 구성원들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리더 외의 구성원들의 실력이 너무 차이가 나면 갈등이 생기므로 어느 정도 비슷해야 합니다. 이 모든 요건을 갖추고 모임을 주선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음악이 본업인 프로들의 실내악 모임은 행사나 연주회에서 돈을 받고 연주하는 등 뚜렷한 목표 달성이 가능하지만, 아마추어는 본업이 따로 있고 음악은 그냥 좋아서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학원에서 실내악 모임을 기획하고 유지할 때에는 대개 지도 선생님이 배정되고, 회원들은 소정의 회비를 내고 참여합니다. 공간대여료와 전공자 선생님의 레슨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지금 학원에서 제가 참여하는 합주 모임은 2개인데, 한 곳에서는 피아노를, 다른 곳에서는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습니다. 저는 어릴 때 피아노를 배웠는데 이젠 칠 일이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레슨은 받지 않더라도 합주모임에서 피아노를 연주할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지금 학원에서 바이올린을 배우고 있으니 바이올린을 하는 실내악 모임이 더 재미있고 도움이 되지만, 이 모임은 3개월마다 멤버들이 바뀌는 구조입니다. 반면 피아노를 맡은 모임은 우연히 자발적으로 만들어졌는데 9개월 동안 구성원들이 바뀌지 않았고, 소속감과 배려심이 많아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즐겁습니다. 두 모임 모두 클래식 실내악과 대중 음악을 번갈아가며 연주합니다.      


우리는 사회적 존재이기에 어떤 일을 하든 관계를 맺고 그 안에서 또 즐거움을 찾습니다. 악기를 연주하는 것은 무생물과의 대화이기에 한편으로는 외롭지만, 함께 연주할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외로움을 넘어 즐거움을 줍니다. 음악으로 타인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글을 쓸 때처럼 정제된 언어로 서로를 배려하고 예의를 지킬 수 있습니다. 서로를 배려하는 대화가 순조롭게 이어질 때 아름다운 음악이 탄생하고, 듣는 이는 조화로움에서 오는 감동을 느끼게 됩니다. 그런 즐거움이 있기에 오늘도 저는 학원에 나가게 되는 것 같습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커버이미지 출처: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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