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요즘 연습하고 있는 곡은 러시아의 작곡가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 2악장입니다. 아마추어 연습생이 배우기에는 매우 어려운 곡이지만, 일단 선생님이 곡을 주셨으니 연습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제가 그동안 연주했던 곡 중에 곡 길이에 비해 가장 표현하기 어렵고, 노래하듯이 연주해야 하는 곡입니다.
이 곡은 차이코프스키가 처음 작곡했을 때 악평을 받았기로 유명합니다. 프랑스의 작곡가 랄로(Lalo)의 바이올린 협주곡《스페인 교향곡 Symphonie Espagnole in D minor, Op. 21》을 접한 그는 독특한 형식에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는 주체하기 힘든 열정과 영감에 사로잡혀 자신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작곡하기 시작합니다. 그는 불과 일주일 만에 1악장을, 사흘 뒤엔 2악장을, 이틀 뒤엔 3악장을 완성했습니다. 25일 만에 곡을 완성한 차이코프스키는 친구와 동생을 불러 곡에 대한 최종 점검을 했는데, 이 자리에서 2악장이 곡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의견이 나왔고, 이에 차이코프스키는 아예 2악장을 다시 작곡했습니다.
완성 후 차이코프스키는 이 곡을 당대 영향력 있던 바이올리니스트 레오폴드 아우어(Leopold Auer)에게 헌정하고 초연까지 맡아주기를 희망했으나, 연주 불가능이라는 이유로 거절되었습니다. 결국 초연은 무한정 연기되었고, 1881년 12월 4일이 돼서야 러시아가 아닌 빈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아돌프 브로드스키(Adolph Brodsky)가 맡았고, 거장 한스 리히터(Hans Richter)가 지휘하는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협연했습니다. 하지만 초연은 실패로 돌아가 차이코프스키는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습니다. 또, 당시 빈의 평론가들은 일제히 혹평을 했습니다.
이 곡이 재평가를 받는 데에는 브로드스키의 헌신이 있었는데, 그는 초연의 실패 후에도 이 곡을 다시 무대에 올리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런 브로드스키의 노고에 고마움을 느낀 차이코프스키는 이 작품을 그에게 헌정했고, 1882년 4월 런던 공연을 필두로 1882년 8월 20일 모스크바 초연 때는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냄으로써 비로소 그 가치를 인정받았습니다.
기술적으로 어려워서 연주하지 못하겠다는 것은 연주자로서 쉽지 않은 고백임에도 불구하고 당대 영향력 있던 연주가가 그런 말을 했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모차르트나 베토벤의 협주곡은 독주자와 오케스트라의 구분이 비교적 명확하고, 오케스트라는 반주에 가깝게 시작하여 독주자가 '짠' 하고 나타나는 형식입니다. 이에 반해 차이코프스키의 협주곡은 오케스트라가 먼저 시작하지만 어쩐지 독주자와 오케스트라 간에는 명확한 구분 없이, 그야말로 예측 불가로 주고받는 형식입니다.
초반부의 오케스트라는 서정적으로 시작했다가 갑자기 격정적으로 연주하는가 싶더니 아쉬울 새도 없이 독주자에게 바통을 넘깁니다. 기승전결이라기보다는 끝없는 파도를 타는 느낌으로 격정과 서정을 오고 갑니다. 1악장만 끝까지 들어도 연주자보다 듣는 사람이 더 지칠 정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을 들어보면 '가슴을 후벼 판다'는 표현을 쓰고 싶어 지는데, 바이올린 협주곡은 그런 차이코프스키의 스타일을 표현한 결정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긴 곡이어도 지루하지 않게 들을 수 있을 만큼 역동적인 음악입니다.
제가 연습하고 있는 2악장은 칸초네타: 안단테(Canzonetta–Andante)로, 칸초네타란 주로 16~17세기에 이탈리아에서 유행했던 가벼운 기분의 작은 가곡이라고 합니다. 한 마디로 ‘작은 노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구조를 보면 A-B-A의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 A에서는 슬프고도 아름다운 선율이 역시 가슴을 후벼 팝니다. 숨죽여 울듯 시작하는 첫 멜로디는 단조로, 슬픈 테마가 끝나면 잠시 분위기를 바꾸어 장조의 밝은 멜로디 B파트가 시작됩니다. 마치 파도가 넘실거리듯 고음과 저음부를 부드럽게 오가며 아름다운 자연 속에 있는 듯한 B 파트가 끝나고 나면 다시 A의 구슬픈 멜로디로 돌아가서 휘몰아치듯 날카로운 슬픔이 고음으로 표현되고, 다시 숨죽여 여린 음으로 끝나게 됩니다.
이 곡에서 저에게 가장 어려운 것은 음과 음이 연결되듯이 연주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노래를 부를 때 한 음 한 음 끊어 부르지 않듯이 이 곡은 연결되게 한 프레이즈를 연주해야 합니다. 음이 연결되려면 큰 맥락을 파악해야 하고, 활이 바뀔 때 힘을 빼고 티가 나지 않게 연결해야 합니다. 왼손의 운지는 저음이든 고음이든 포지션 이동이 상당히 많은데, 숙련되지 못하면 포지션 이동 때 뚝뚝 끊어집니다. 총체적 난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차이코프스키는 이 곡을 작곡할 때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그리고 자신이 야심 차게 작곡한 협주곡이 거절당하고 비난받았을 때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그에게 정신적으로 위안이 되어준 폰 메크 부인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25일이라는 짧은 시간 내에 써 내려간 곡이지만, 대중이 그 곡을 받아들이고 소화하기에는 많은 시간이 걸렸던 것입니다. 1878년 4월에 작곡했지만 초연은 1881년 12월에 이루어졌고, 성공적인 평가를 받은 것은 1882년 4월부터이니 4년에 가까운 세월입니다. 내가 만들어낸 창작물이 연주자에게, 관객에게, 비평가에게 4년 가까이 비난받고 거절당하다니, 작곡가에게는 너무도 절망스럽고 고통스러운 시간이 아니었을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이코프스키는 버텨냈습니다. 거기에는 초연이 실패였음에도 계속 무대에서 연주하고 곡을 알리려 했던 브로드스키의 역할도 컸을 것입니다.
문득 서태지와 아이들의 첫 방송출연 장면이 생각납니다. 차이코프스키 당대로부터 100년이나 지난 시점에도 새로운 스타일의 음악은 여전히 기존의 틀을 깨는 고통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기존의 음악에 길들여져 있던 비평가들은 쓴소리를 참지 못했고, 새로운 것을 가지고 나온 아티스트는 무안함을 견뎌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대한민국을 뒤집어 놓을 만큼의 인기와 다양한 장르를 혼합한 대중음악을 만들어냈고 한국형 힙합이라는 장르를 개척해 나갔습니다.
우리는 남들이 거절하고 비난하는 것을 어디까지 감수하고 버텨낼 수 있을까요? 타인의 평가를 완전히 무시하는 것도 답은 아니겠지만, 특히 예술의 영역은 타협보다는 나의 개성과 주관이 중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당대 연주 불가라고 했던 차이코프스키의 협주곡이 이제는 바이올리니스트들이 꼭 한 번은 도전하는 레퍼토리가 되었으니까요. 물론 지금도 이 곡은 어렵습니다. 저도 1, 3악장은 연주할 수 없습니다. 연습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제 수준으로는 정말 연주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2악장은 이왕 시작한 김에 열심히 해 보려고 합니다.
지금 혹시 타인의 비난과 거절로 힘든 분들이 계시다면,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들으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보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어디까지가 개성이고 어디까지가 고집인지, 어디까지 밀어붙여야 하는 것인지 말입니다. 그것이 내 커리어고 내 창작물이라면 한 번 주저 없이 밀어붙여 보시는 것도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