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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weet little kitty Jan 15. 2024

Accolay의 인생작, 바이올린 협주곡 1번

곡이 어려워져도 배움의 원리는 비슷하다.

오늘 말씀드릴 곡은 Accolay의 바이올린 협주곡입니다. Jean Baptiste Accolay(1833-1900)는 낭만 시대 벨기에의 연주자이자 작곡가로, 그의 작품 중 가장 대표적인 바이올린 협주곡 1번 가단조가 있습니다. 악장 구분 없이 하나의 곡으로 되어 있으며 입문자를 위한 협주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앞선 자이츠나 비발디의 협주곡에 비하면 저에게는 길고 어려웠습니다.      


이 곡을 배울 때 선생님이 저에게 가장 강조한 부분은 도입부입니다.

“빠 암! 이렇게 소리가 나야 해요.”

맨 첫 부분에 G선(바이올린에서 가장 낮은음을 내는 줄)을 길게 그었다가 아르페지오 형태로 음이 펼쳐지고 고음으로 도약합니다. 바로 그 저음 시작음을 줄과 활이 밀착되도록 힘 있게 그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https://youtube.com/shorts/yGdqZGjvleo?si=dFCPjPdAfVngrRVR

Accolsy concerto 의 도입부



100m 달리기를 한다면 한껏 자세를 낮추고 엉덩이를 위로 치켜들고 준비를 하듯, 도입부의 첫 음은 고음으로 화려하게 도약하기 위한 준비과정입니다. 그런데 그 음의 시작이 힘이 없으면 에너지가 비축되지 않아 바람 빠진 풍선 같은 아르페지오가 됩니다.     


바이올린 연주곡에 고음이 있으면 연주자는 긴장합니다. 틀리지 않을까, 포지션 이동은 잘 올라갈 수 있을까, 염려하는 마음에 시작 부분의 저음은 간과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시작 음의 첫 시작부터 활과 줄이 물려 있지 않으면 적절한 진동이 오지 않습니다. 모든 일의 시작이 중요하듯 줄의 진동도 맨 처음 마찰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이 곡을 연주하는 학생들은 대개 협주곡을 시작하는 단계이므로, 활 밀착이 능숙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게다가 이 곡은 시작부터 연주자를 겁먹게 만드는 화려한 아르페지오가 있어 긴장이 됩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곳은 저음의 시작부, 달려 나가기 전의 준비 자세입니다. 여기에서 충분히 에너지를 비축할 수 있어야 비장하고 화려한 도약을 할 수 있습니다. 듣는 이는 이미 도입부에서 이 곡의 비장하고 격정적인 분위기를 파악하게 됩니다.     


다음으로는 아마추어 연주자들이 힘들어하는 겹줄 긋기(double stop)이 나옵니다. 겹줄 긋기는 2개의 줄을 한 번에 긋는 테크닉입니다. 피아노를 칠 때는 한 번에 두 개 음을 치기 쉽지만, 현악기에서는 고르게 2개의 음을 내려면 활의 각도와 압력, 속도를 모두 고려해야 하므로 어렵습니다. 2줄을 그었는데 1줄만 소리가 나기도 하고, 왼손가락 운지가 정확하지 않으면 불협화음이 납니다.     

 

이어서 셋잇단 음표도 많이 나오는데, 셋잇단 음표는 1박을 3등분 하여 연주하는 것으로, 음표는 많지만 3개의 음표 중 첫 음이 잘 들리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첫 음이 들리지 않으면 멜로디가 무엇인지 모르게 되고 정신없이 지저분하게 들립니다.      


중반부에 이르면 이 곡은 격정적으로 흐르던 도입부와는 달리 평온하고 아름다운 장조의 선율로 바뀝니다. 산악지대를 오르내리다가 평야에 도착한 기분입니다. 이 부분에서는 활을 너무 강하게 쓰면 안 되고 사뿐히 내려앉듯 사용해야 합니다. 도입부의 강한 도약과는 대비를 이룹니다. 활을 천천히 부드럽게 사용하는 것은 빠르고 강한 활 긋기보다 오히려 어렵습니다. 활이 떨리기도 하고, 내 소리가 적나라하게 들려서 빨리 넘어가고 싶어집니다. 하지만 이 부분의 선율이 너무나 아름답기에 천천히 제대로 연습해야 합니다.     

 

이어 연주자의 기교를 필요로 하는 빠른 구간이 나옵니다. 16분 음표가 휘몰아치듯 끝없이 반복되고 나면 음악은 1막의 커튼이 내려오듯 다시 저음으로 내려오는데, 너무나 극적이고 아름다운 선율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어 오케스트라의 간주가 나오고, 재현부에서는 약간의 변형이 있지만 앞부분의 반복입니다. 반복이 어느 정도 끝나고 나면 3도 화음이 주가 되는 겹줄과 16분 음표의 빠른 장조 선율로 곡을 마무리하게 됩니다.      


이 곡을 배우는 동안 제가 느낀 점은, 곡이 복잡하고 길어지더라도 앞에서 배운 기본 원칙을 지키면서 연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도입부의 시작음이나, 16분 음표의 빠른 구간이나 모두 활과 줄의 관계를 밀착되도록 이어 나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격정적이고 아름다운 멜로디를 전혀 표현할 수 없게 되어 앙꼬 없는 찐빵처럼 됩니다. 즉, 어떤 테크닉을 구사하든 활밀착이 기본입니다.

     

두 번째로 아무리 음표가 많아도 핵심이 되는 음이 존재합니다. 수많은 학생들이 운동장에 서 있을 때 각 반 별로 줄을 서고 맨 앞의 학생이 대표가 되듯이, 음이 많다 해도 첫 음을 강조주며 큰 흐름을 읽을 수 있게 연주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음악은 구획과 흐름이 없는 오합지졸이 됩니다.    

  

마지막으로, 곡이 길수록 중심이 되는 선율을 잘 표현해야 합니다. 이 곡 역시 오케스트라의 간주가 지나면 앞부분의 중심 선율이 조를 바꾸어 반복되는데, 단조 부분과 장조 부분이 있습니다. 중심 선율을 잘 표현하면 듣는 사람에게 인상적인 곡으로 기억되지만, 어렵고 빠른 부분에만 집중하면 어떤 곡이었는지 기억에 남지 않습니다.     


우리는 태어나서 걸음마를 하고, 말을 시작하고, 유치원에 갑니다. 때가 되면 초등학교에 가고, 다음으로 중학교에 가고, 또 고등학교에 갑니다. 어렵고 복잡해지는 배움의 과정이지만, 그 안에는 반복되는 경험을 통해 기억이 만들어지는 학습 원리가 존재합니다. 기본 원리를 무시한 채 어렵고 복잡한 지식을 무작정 습득하려고 하면 기초가 없어 언젠가는 무너지게 됩니다.


협주곡도 마찬가지입니다. 스즈키 교본에서 배운 협주곡을 지나 점점 복잡하고 긴 협주곡으로 넘어가더라도, 기본적인 원리는 비슷합니다. 활과 줄이 밀착되도록 줄의 진동에 집중하고, 핵심이 되는 음을 강조해서 표현하며, 주요 선율이 잘 드러나도록 연주한다면 점점 어려운 곡으로 넘어가더라도 언젠가는 해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https://youtu.be/NnSzb_N-JWc?si=Eyqpw_atwhQMW_WY

1945년생인 이차크 펄만이 2015년에 낸 음반, 부제가 Concertos from my childhood 인점이 눈에 띈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배움은 입시와 승부에 쏠려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연주가 오디션이 아니듯이, 배움은 누가 더 어렵고 많은 지식을 가졌는지 겨루는 승부만은 아닙니다. 배움은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 배우게 하고,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입니다. 그 안에는 큰 원칙이 있고, 원칙을 지킨다면 속도는 다르지만 우리가 원하는 곳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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