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여름 방학, 중학교 2학년인 큰 아이는 교보생명에서 주최하는 <대산청소년문학상>이라는 백일장에서 입상을 했습니다. 작년 봄부터 지금까지 본격적으로 시와 소설 쓰기를 공부하며 크고 작은 백일장에 도전해 보았지만 입상한 것은 처음입니다.
아이는 시 부문에 도전했는데, 예선 작품으로 5편의 시를 5월 말까지 제출하고 한 달 정도 결과를 기다렸습니다. 대산청소년문학상은 예선에 참가한 학생(약 900명 내외)을 심사 후 80명(고등학생 60명, 중학생 20명으로 사실은 고등부가 주를 이룹니다.)을 본선 진출자로 뽑습니다. 본선에 진출하면 천안의 교보연수원으로 문학캠프를 보내줍니다. 2박 3일 동안 현역 시인이나 소설가, 문예창작과 교수님과 이전해 수상한 대학생 선배들이 캠프에 참여하여 참가자의 작품을 함께 읽어보고, 본선 백일장도 현장에서 개최합니다. 예선 작품과 본선 작품의 점수를 합산하여 마지막 날 수상자를 발표하는데, 아이는 중등시 부문에서 은상을 받았습니다.
처음으로 받은 상이고, 문학캠프라는 특별한 행사에 참가할 수 있었으며, 국내 청소년 백일장 중 입시에 가장 막강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유서 깊은 백일장 중 하나이기에 아이는 누구보다 기뻐했습니다.
아이를 천안에 데려다주고, 이틀 후 천안으로 데리러 가면서 참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들은 누구나 자신의 강점이 있고 그것을 잘 키워주면 재능이 된다는 것. 그 과정에서 부모는 믿어주고 할 수 있는 뒷바라지를 해 주면 된다는 것을요.
물론 중학생 때 받은 상이 이 여정의 마침표가 될 리는 없습니다. 이번 문학캠프의 심사위원 들 중에서도 청소년 문학상을 수상한 분들이 꽤 계신데, 돌이켜보니 수상여부보다도 다른 사람들의 시를 읽어보고 또 함께 배운 경험으로 글쓰기를 이어나갔다고 합니다.
아이는 캠프에서 문예창작과 교수님과 선배들 앞에서 자신의 시를 읽어보는 자리가 가장 떨렸다고 했습니다. 가장 아쉬웠던 것은 모든 참가자들의 작품을 읽어볼 수 없었다는 점이라고 합니다. 참가자 명단에는 학생들의 소속학교와(학교 밖 청소년도 있습니다.) 예선에 제출한 작품의 제목이 들어있는데, 아이는 시의 제목을 보고 꼭 읽어보고 싶은 시들을 체크해 두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모둠으로 진행되는 수업 특성상 자기 모둠의 시만 읽어볼 수 있었기에 그것이 너무 안타깝다고 했습니다.
백일장 본선은 마치 과거시험 같습니다. 이번 시 부문 시제는 <팬데믹 하루 전>이었고 제목은 <나와 나의 OO>으로 정해주었다고 합니다. 소설 부문은 시제가 다릅니다. 아이들은 아침부터 3시간 반 동안 원고지에 자신만의 작품을 써내야 합니다. 시는 그렇다 치고, 소설을 쓰는 친구들은 12000자 정도의 소설을 시간 안에 어떻게 완성했을지 참으로 대견하고 존경스럽습니다.
중등부는 금상, 은상, 동상 각 1명씩 수상하고, 고등부는 금상은 1명이지만 은상과 동상은 3명, 6명씩 수상합니다. 금상 수상자는 예선과 본선 작품을 모두, 나머지 수상자들은 예선 작품 중 주최 측에서 선택한 1편을 수상집에 실어줍니다. 32회째인 만큼 수상집도 해마다 발간되었고, 청소년 작품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완성도 높은 시와 소설이 꽤 많습니다.
아이는 자신의 본선 작품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며 아쉬워합니다. 본선에 제출한 작품은 본인에게도 돌려주지 않으며 금상 수상자 외에는 공개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본 대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중복 응모나 표절 여부인데, 학생 본인이 재단의 담당자와 통화하며 중복 응모나 표절작품이 아닌지 대답하고 서약서를 제출해야 합니다. 수상 후에도 다시 한번 확인 작업이 이루어지는데, 이것이 입시와 밀접한 관련이 있기에 더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아이는 제법 두둑한 상금도 받고, 자신의 작품이 담긴 수상집도 발간되기에 출판권 위임 계약서와 상금 수령을 위한 서류도 제출했습니다. 아이가 저보다 출판계약을 먼저 하게 되었네요.
2023년 대산청소년문학상 수상집
내가 쓰는 언어를 다듬는 과정은 몸도 마음도 성장하는 시기의 청소년에게 훌륭한 교육이자 경험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문학은 다른 예술과 마찬가지로 개인과 사회의 문제를 다루기에 인간과 사회에 대해 공부해야 문예창작을 할 수 있더군요. 아이가 앞으로 어떤 길을 가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 공부는 충분히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저희 아이가 예선에 제출한 시는 중학생이 흔히 생각할 수 있는 소재를 주로 다루었는데, 친구들 간의 험담과 상처받는 과정을 다룬 <마라탕>, 청소년의 정체성 문제를 다룬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외할머니의 죽음과 그로 인한 이별을 다룬 <할머니와 재봉틀>, 주입식 교육 문제를 다룬 <미술학원>, 현대인의 욕망을 식품과 관련해서 표현한 <냉장고> 등입니다. 아이는 그동안 보았던 웹툰과 유튜브 영상, 그리고 학교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시를 썼다고 했습니다.
백일장이 끝나고 한동안 아이는 들떠 있었고 저는 얼떨떨했습니다. 2주 정도 지난 후 아이가 좋아하는 회전초밥을 먹고 제가 좋아하는 카페에서 아이는 아이스크림을, 저는 커피를 마셨습니다. 조용히 둘이 마주 보고 앉아 각자의 책을 읽는 시간, 저는 갑자기 눈물이 흘렀습니다. 저 역시 중학생 때 졸업식에서 상을 받기 위해 1년 동안 고군분투 했었고, 원하는 상을 받은 경험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상의 목적은 엄마를 기쁘게 하는 것, 그리고 기쁨을 넘어 행복해진 엄마가 마음의 여유를 갖고 저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기쁨은 잠시일 뿐 엄마는 행복하지도, 여유롭지도 않았지요. 그래서 그 상은 저에게 실패한 상이고 부끄럽기까지 했습니다.
먼 길을 돌아, 제가 원하는 그 자리에 왔네요. 이제 제 아이는 부모를 기쁘게 하기 위해, 부모를 행복하게 하기 위해 상을 받지 않아도 되니까요. 그리고 결국 이렇게 귀중한 시간을 함께 보내는 사이가 되었으니까요. 사람들은 대개 거창한 꿈을 가지고 있지만 저는 오늘 제 꿈이 이것이었음을, 그리고 꿈을 이루었음을 깨닫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아이가 모르게 얼른 눈물을 닦고 마실 물을 떠 옵니다.
결국 아이를 위해서 시작한 모든 일은 저를 성장시킨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을 보고 아이도 본격적으로 글을 써야겠다고 결심했다는 말이 얼마나 감동적인지 모릅니다. 게다가 네이버 블로그에 다른 수상자의 엄마가 수상 내용을 글로 남긴 것을 보고 아이는 저에게도 브런치에 자신의 수상에 관해 글을 써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아이는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정말 싫어했는데, 저로서는 이런 변화가 놀라울 따름입니다. 이번 수상이 아이의 인생에 소중한 경험이자 한 걸음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씁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