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weet little kitty Dec 06. 2022

그 소설의 제목은 <눈썹>

아이의 글쓰기 시험

눈과 비가 섞여 내리던 지난 토요일 아침, 아이는 A예고 영재학급 시험을 보러 갔습니다. 길눈이 어두운 저는 한 주 전에 미리 운전해서 가 보았지요. 학교는 가파른 언덕을 올라야 하는 산자락에 있었습니다. 다행히 주차공간은 곳곳에 넉넉했습니다.


시험을 보러 온 아이들은 대부분 중학생들입니다. 교복을 입고 왔거나 말투, 걸음걸이가 초등 같지 않은 아이들이 대부분이었어요. A예고는 연극 영화, 음악, 미술, 무용, 문예창작. 이렇게 5개 영재 학급을 모집합니다. 연극 영화와 미술 파트는 경쟁이 특히 셉니다.


아이가 지원한 문예창작과는 15명 선발에 30명 지원입니다. 아이는 아침 일찍 일어나 샤워를 하고 국을 떠먹고 나왔습니다. 어제 저녁 면접 준비를 하는 모습이 꼭 취업준비생 같았습니다. 긴장된다면서도 차 뒷자리에서 종알종알 떠드는 모습이 평소답지 않게 밝았습니다.


저희 큰 딸아이는 키우기 어려운 아이였습니다. 감각이 예민하고 불안도가 높아 쉽게 잠들거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했습니다. 뭐든 시작과 변화가 어려웠고 느렸습니다.


아이를 이해하고 도와주기 위해 일을 내려놓고 노력한 지난 몇 년을 보내고 깨달은 점이 있습니다.

왜 우리 아이는 순하고 말 잘 듣고 알아서 학원 다니고 시키는 대로 하지 않을까?

그럼 내가 직장 다니고 커리어를 쌓고 돈도 벌고 다 좋았을 텐데. 나는 그런 딸이 되려고 노력해왔는데.


왜냐하면 제가 그렇게 살아와서 좋았던 점도 있겠지만, 이면에는 케케묵은 분노가 쌓여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결국 아이가 저에게 원했던 것은, 아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결과보다 과정을 바라보고 함께 느리게 걷는 것이었습니다. 그건 제가 부모님께 원했던 간절한 두 가지 바람이기도 했고요.


저는 부모님께 그것을 요구하지 못했습니다. 사랑받고 싶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었으니까요. 그리고 부모님은 늘 아프시고 그로 인해 가엾은 존재였으니까요.


제 큰 아이는 억지로 부모에게 자신을 맞추지 않고 저와 반대의 길을 택해, 제 삶의 방향을 틀었습니다. San Francisco의 Street car 종점에 가면 방향을 틀기 위한 공간이 있습니다. 사람이 힘을 써서 직접 전차를 돌리지요. 그래야 다른 방향으로 출발할 수 있으니까요.


https://youtu.be/Pj9qlGg9mFU

높은 언덕과 도심까지 활보하던 전차는 종점에서 방향을 돌립니다.



그간의 제 삶도 그러했을 것입니다. 방향을 바꾸기 위해 온몸으로 저항한 아이와 그로 인해 내 삶을 돌아보고 방향을 돌린 저는 이제 한 발짝 쉬어갑니다. 새로운 출발이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글쓰기 주제는 <눈썹>이었다고 합니다. 1500자 내외의 즉석 소설을 쓰고, 언니들과 면접까지 보고 온 아이는 차 안에서 또 종알거립니다.

아, 다시 쓰고 싶다. 결말 부분을 고쳐야 하는데.

그래도 붙으면 기분 좋을 것 같아. 붙었으면 좋겠다!


아이를 보는 제 마음은 잠깐 울컥하고 뭉클했지만, 이내 산뜻하게 바뀝니다. 마침 하늘도 파랗게 개인 날씨입니다.

서러움과 분노를 덜어내고 나니, 파아란 하늘처럼 제 마음도 맑아진 걸까요?


아이를 위해 노력했던 시간들은 결국 저를 위한 시간이었음을 깨닫습니다. 아이만큼 성장한 나 자신에게 작은 박수를 보내고 싶은 날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