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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weet little kitty Oct 18. 2021

아이의 공격성은 잔인한 사랑

아마도 Savage Love?

"애가 자꾸 벽에 머리를 들이받아요."

"하고 싶은 대로 안 되면 엄마를 때리는데, 어떻게 하죠?"


만 18개월에서 24개월 사이 소아청소년과에서 이루어지는 3번째 영유아 검진은 영양, 안전사고 예방, 대소변 가리기에 대한 교육과 발달 선별 검사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실제로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공격성>에 대한 질문이었다.

소아청소년과 의사로서 내가 갖추고 있던 <육아>에 대한 지식만으로 이 질문에 구체적으로 대답하기는 참 어려웠다.

 

분노 발작, temper tantrum   이미지 출처 https://images.app.goo.gl/kVPfd8s7vNhjwLJQ7



 프로이트멜라니 클라인은 공격성을 파괴적 본능으로 이해한 반면, 위니 공격성을 본능이 아닌 생명력과 활동성의 표현이라고 생각하였다.  


부모는 유아로 하여금 보복에 대한 두려움 없이 공격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 D. W. Winnicott


이 무슨 신선한 충격이란 말인가?

부모를 보복에 대한 두려움 없이 공격한다니,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가니 아이를 버릇없이 키우면 안 된다고 말하는 문화권에서 말이다.


 영국의 소아청소년과 의사이자 정신분석가 위니콧의 이론을 조금 더 들여다보기로 한다.


 Winnicott은 '초기 유아의 본능적 사랑은 잔인하다'(ruthless)고 기술하였다.
정상적인 초기 유아는 대개 놀이 속에서 엄마와 잔인한 관계를 즐기는데, 이 잔인성은 파괴적 본능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환상 속 엄마에 대한 전적인 믿음에서 온다. 어머니가 유아의 잔인함을 함께 즐길 수 있을 때, 공격성은 건강하게 인격 속으로 통합되고 잔인성은 예술가의 창조성과 긍정적으로 연결된다.
              
    -최영민 <대상관계 이론을 중심으로 쉽게 쓴         정신분석이론> 중에서

초기 유아의 본능적 사랑은 잔인하다?

어렵게 느껴지는 글이지만 떠오르는 노래 있다.


Savage love

 
Did somebody, did somebody break your heart?


Lookin' like an angel but your savage love


리듬은 흥겹지만 가사는 가슴을 아프게 하는 그 노래처럼, 공격성을 보이는 유아는 엄마에게 달콤 쌉쌀한, 그야말로 <잔인한 사랑(Savage Love)> 일 것이다. 하고 싶은 대로 되지 않는다고 엄마를 때리거나 벽에 머리를 들이받는 행동을 바라보는 부모의 심정이란.

천사같이 예쁘던 내 아이가 천하에 버릇없는 아이로 자라지는 않을까 두려움과 불안이 밀려드는 순간이다.


시기별 공격성의 분류


임상심리학자이자 정신분석학자인 박경순 교수의 <엄마 교과서>를 보면, 공격성을 시기별로 나누어 크게 3개의 category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첫째, 만 1세-2세 아이들은 공격성과 두려움이 원처럼 하나로 묶여 돌고 돈다.

아동 정신분석가 멜라니 클라인은 공격성을 타고난 본능으로 설명하였다. 자신의 공격성에 스스로 놀라고, 감당할 수 없어 밖으로 내보내려고 한다.(엄마 때문이야!) 그리고 엄마가 걸러서 순화시켜 되돌려 주지 못하면 누군가 나를 해칠지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되돌아온다.

예를 들어, 배가 고프거나 기저귀가 젖었을 때 아이는 언어로 표현하지 못하고 운다. 무언가 나쁜 것이 내 안에 있는 것 같아 내보내려고, 혹은 도와달라고 운다. 안아서 달래주거나 먹이고 기저귀를 갈아주지 않으면 점점 더 고통스럽고 불안해서 공포를 느낀다. 결국 누군가 나를 해친다고 느끼게 된다. 이러한 상황이 반복되면 공격성은 두려움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더욱 발달하게 된다.


만 2세-3세 사이에는 주로 위니이 표현한 무례함(혹은 잔인함)으로 보았다.

<아니야, 싫어, 내 거야, 엄마 미워!>

자기주장이 발달하고 희로애락이 골고루 형성되는 시기의 자기표현법이다. 놀다가 너무 신이 나서, 혹은 무언가 잘 안 되면 갑자기 공격적인 행동을 한다. 에너지가 많은 아이일수록 심할 수 있고, 신체운동기능이 아직 완벽하지 않아 생기는 결과일 수 있다.


 내가 진료실에서 받은 질문의 사례들은 대개 여기에 속했던 것 같다.

<엄마 교과서>가 제시하는 해법은, 아빠에게 총을 쏘면 꼴깍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고, 엄마를 때리면 아프다고 놀이로 표현해 주는 것이다. 아이가 받는 상처는 최소화하면서 나의 공격성이 타인을 아프게 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방법이다.

 실제로는 아이가 부모를 때리면 '너도 한 번 아파봐라' 하면서 머리를 잡아당기거나 똑같이 때려주었다는 경우가 많았다. 나 역시 부모로서 그 심정을 모른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지금 아이 연령에서는 (혹은 몇 살이 된다 하더라도) 효과는 없고 상처만 받는 훈육법이라고 설명하면 부모님들은 대개 수긍하였다.


만 3세 이후에 보이는 공격성은 좌절의 결과 나타난 우울감으로 보았다. 아이들은 누구보다 잘하고 싶고, 더 사랑받고 싶은데 그것이 좌절될 때 우울감을 느낀다. 사랑에 빠지는 것과는 달리 사랑을 유지하는 능력은 사랑이라는 동전 뒤에 있는 공격성을 수용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언급하고 있다.


 아이가 공격성을 보일 땐 세 가지 중 어느 쪽에 주로 속하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즉, 공격성이 문제 행동으로 드러난다면 공격성과 공존하는 감정의 정체를 찾아주어야 한다.


"그러면 언제부터 제대로 훈육을 해야 하나요?"


부모의 입장에서 가장 궁금한 부분이다.

일단 전문가들도 훈육 시기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기는 하다.


내가 공부하고 있는 최영민 교수님의 강의에서 나 역시 같은 질문을 드렸다. Piaget의 인지발달 이론에 르면만 24개월 경에는 감각 운동기가 끝나고 전조작기로 넘어가게 되는데, 반사 운동을 포함한 유아의 거친 행동들이 조절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위니콧은 이를 일차 공격성이라고 불렀는데, 의도를 가지고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우연에 해당한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24개월이 지나면 훈육이 가능해지는데, 최적의 좌절에 해당하는 훈육이어야 한다고 하셨다. 부모조차 감정이 격한 상태로 하게 되는  공포의 훈육이 아니라, 따뜻한 시선으로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어른의 가르침이다.


 반면 엄마 교과서에서는 대뇌 발달 및 심리 발달 수준을 고려하여 36개월 이후로 제안하였다. (여아보다 남아는 조금 더 늦어도 된다고 함)

아마도 36개월이 되면 본격적으로 언어가 발달하고 대상 항상성이 형성되기 때문일 것이다. 18-24개월에 먼저 성되는 대상 영속성이란 눈앞에 대상이 보이지 않아도 떠올릴 수 있는 능력인 반면, 정서적 대상 항상성은 부모에게 매우 실망했을 때에도 부모에 대해 좋은 기억을 떠올릴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결국 아이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은 단순 대상 영속성이 아니라 정서적 대상 항상성일 것이다. 이러한 능력은 부모에 대해 좋은 경험들이 충분히 쌓였을 때에만 가능하다.


 여러모로 우리가 알고 있던 상식, 우리 부모님 세대의 양육법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개념인 것은 확실하다. 그것을 한 단계 넘어서는 것이 우리의 과제가 아닌가 한다. 어려운 일이지만, 한 인간을 키워내는 데에는 더없이 필요한 일지 모른다. 나그네의 옷을 벗긴 것은 세찬 바람이 아니라 따스한 햇빛이었던 것처럼, 우리의 마음에 햇빛을 들이면 어떨까. 공격성에 더 공격적인 태도로 대응하지 않고, 온화한 볕을 내려주어 얼음처럼 차가운 눈이 녹아내리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커버 이미지 출처 <Melon, Savage Love (Laxed - Siren Beat) [BTS Remi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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