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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weet little kitty Dec 19. 2021

되지 않던 것들이 될 때의 기쁨

인생은 결핍을 채워가는 과정인지도

"음식물 쓰레기를 버려야지."

설거지를 다 하고서 돌아보니 어젯밤 묶어서 구석에 둔 음식물 쓰레기봉투가 보이지 않는다.

내가 어젯밤에 버렸나? 아닌데, 밤에 나가기 싫어서 아침 버리려고 저 구석에 뒀는데.


생각해보니 어젯밤에 음식물 쓰레기를 정리하는 나를 보면서 남편이 <내가 지금 버릴까> 라고 했던 말이 생각난다.

남편은 부엌일을 돕지 않는다. 바쁘기도 하지만, 워낙에 집안일을 할 만큼 정돈된 성격이 아니다. 제 몸 하나 제대로 챙기면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그런데 어제는 이랬다.

"여보, 어제 부스터 맞고 아프지 않아? 내가 지금 나가서 버려줄까?"

"아니야. 내일 아침에 버려도 돼."

"그럼 내가 내일 아침에 일찍 버려줄게."

"......"


이런 대화는 가끔 있었으나 실제로 이루어진 적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어쨌든 오늘 남편은 아침 일찍 음식물 쓰레기를 내다 버렸다. 부엌 구석에 있어 눈에 잘 띄지도 않았을 텐데 기억하고 있다가 일찌감치 버린 게 틀림없다.


 사람이 안 하던 행동을 하려면 노력이 필요하다. 물론 우리 아파트는 층마다 복도에 음식물 쓰레기 투입구가 있어서 쓰레기 버리는 일이 엄청나게 귀찮은 일은 아니다. 하지만 터치키를 챙겨서 쓰레기를 들고나가 버리는 것은 우리 집 남편에게 노력이 필요한 일임을 나는 잘 안다. 무엇보다 머릿속에 많은 걸 쟁여놓고 사는 남편으로서는 그걸 기억한다는 것부터 쉽지 않은 일이다.


겨우 이 정도 일로, 그만 나는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가사를 분담하는 수많은 남편분들은 왜 그리 감동의 역치가 낮은지 의아해할지 모른다. 나도 왜 눈물이 나는지 설명할 수 없었다.




딸아이와 함께 갔던 놀이공원을 기억해 본다. 아무리 원대한 계획을 세워도, 아무리 좋은 곳에 데려가 편하고 재미있게 놀게 해 주어도 아이는 항상 울었고 항상 화를 냈다. 넓고 사람이 많은 곳, 다양한 놀이기구가 있는 곳은 항상 감당할 수 없는 불안을 일으켰던 것이다. (하지만 가고 싶어 한다) 일본 디즈니랜드에선 2시간, 에버랜드에서도 1시간, 원더박스에서도 30분 이상 아이는 울면서 집에 가자고 했지만 결국 집에 가지도 않는 생떼를 부리며 나머지 가족들을 좌불안석으로 만들었다. 해서 나에게 놀이공원은 늘 공포와 불행의 대상이었다.


 그런 아이가 2년 만에 다시 놀이공원에 가자 했다. 두어 달에 걸쳐 계속 가고 싶어 했다. 아이가 하고 싶은 건 놀이기구 탑승이 아니라 인형을 탈 수 있는 게임들이다. 사격이나. 공던지기 같은.

문제는 이건 어린이들이 쉽게 성공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고,  게임이 어려울수록 예쁘고 비싼 인형이 걸려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아이는 좌절에 매우 취약하다. 나는 단단히 각오를 했지만 이번에도 역시 상황은 좋지 않았다. 아이가 제법 잘할 수 있는 게임은 못생긴 인형이 걸려 있거나 최소 3명 이상 참가해야 시작할 수 있었는데 코로나 때문인지 이용객도 적었고 다들 놀이기구를 타러 갔던 것이다.

 이럴 때 둘째 아이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잘 논다. 그래서 팀을 나눈다. 잘 노는 아이에겐 즐겁게 놀 권리도 있으니까.

내가 둘째와 놀이기구를 한 번 같이 타 줄 동안은 아빠가 큰 아이를 보고, 그다음엔 내가 가서 큰 아이랑 있어 주었다.

큰맘 먹고 이 시국에 여기까지 왔는데 화가 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지만, 잠깐의 화를 누그러뜨리고 나니 방법이 보였다. 불안하고 힘들 땐 옆에 있어주는 것. 큰 아이가 공던지기에 실패한 게 내 잘못은 아니니 그냥 구석 벤치에 앉아 아이가 진정하기를 기다렸다.


"야, 그게 놀이공원 사장님이 말이야.

예쁘고 좋은 인형을 사람들이 쉽게 타가게 할까?

저거 다 돈 주고 샀을 텐데..."


우리는 같이 놀이공원 사장님의 험담을 한다.


"저건 과학적으로 절대 넣을 수 없는 각도야.

게다가 저 바구니 바닥 탄성 때문에 공이 무조건 튀어나오는 거라니까.

이건 사기야. 실력이나 운의 문제가 아니고..."


오늘은 30분이 채 안 되어 화가 풀린 것 같다.

아빠 농구 게임 여러 번 도전해서 일단 예쁜 인형 하나를 손에 쥐고 왔다. 아이는 인형을 받아 들더니 눈물을 닦고 다른 게임에 도전한다.


결국 몸은 지쳤지만 웃으면서 놀이공원을 나올 때, 나는 지나간 수많은 시간들을 떠올렸다. 어린 시절 겁이 많았던 동생은 놀이공원에 가고 싶어 했지만, 막상 그곳에선 우는 아이였다. 나는 맛있는 음료나 간식이 먹고 싶었지만 말하지 못했다. 부모님은 곧잘 화를 내셨다. 우리가 설령 주어진 모든 것에 감사하고 만족한다 해도, 놀이공원에 간다는 것 자체가 부모님에게는 즐겁지 않은 의무였던 것이다.


 나는 기껏해야 두 번 정도로 기억하는 그 씁쓸한 추억들을 품고 사는 부모였다. 놀이공원은 불행한 곳. 무의미한 곳이었다. 거기에서 나의 과거가 되풀이될 때. 그 아픔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모든 것은 큰 아이 때문인 것 같았다.


 그런데 이제 나는 그 산을 넘었다. 화내지 않고 불행하지 않고 불안을 달래줄 수 있었다, 아이도 남편과 나도 정말 많이 성장했다. 남편은 아이의 요구를 관대하게 들어주고 맞춰준다. 어릴 때 우리 집과는 완전히 반대구나.

아빠는 되도록 참으라 했고 결국엔 화를 냈었는데.


 되지 않던 일이란 나만의 결핍일 것이다. 놀이공원에서 집에 돌아오는 길이 한 편의 드라마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범하지만 해피엔딩이다.


오늘은 눈이 소복이 쌓인 공원이 참 예쁘다. 겨울 내 눈이 쌓여 있다면 느끼지 못했을 아름다움이겠지.

나 또한 내 아이들에게 의도치 않게 결핍을 줄테고 아이들은 성장하면 그것을 채워가며 살아갈 것이다. 하얀 테이블 위에 놓인 빈 유리잔에 시원한 물을 채우는 싱그러운 장면을 떠올려본다.


https://unsplash.com/photos/IW_8l8YeZ8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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