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래의 게으름은 어떤 모습일까? 타인과 함께 생활하고 도시로 이주하며 우리는 부지런해지기 시작했다.
농업을 계기로 인류는 정착했고, 1, 2차 산업혁명을 통해 농촌에서 대도시로 이주한 인류는 그 어떤 동물보다 부지런하게 더 많은 일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제 IT를 기반으로 한 3차 산업혁명과 인공지능 위주의 4차 산업혁명은 노동과 인류의 관계를 다시 과거 모습으로 되돌려놓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기계가 육체, 지식 노동을 대체하는 순간 노동을 필수가 아닌 선택이 된다. 이것은 노동의 정상화라고 해석할 수 있다.
고향
인간은 왜 고향에 오면 마음이 편해지는 것일까? 그 이유를 뇌 발달과 연결시켜 설명할 수 있다. 1000억 개 신경세포들 간의 수많은 시냅스들, 모든 시냅스들의 위치와 구조를 유전적으로 정확히 물려받기는 불가능하기에 뇌는 미완성 상태로 태어난다. 대신 뇌에게는 약 10년간의 '결정적 시기'가 있다. 결정적 시기 동안 자주 사용되는 시냅스들은 살아남고, 사용되지 않는 시냅스들은 사라진다.
고향이 편한 것은 어릴 적 경험한 음식과 소리, 얼굴과 풍경, 이 모든 것들이 우리의 뇌를 완성시킨 바로 그 요인들이기 때문이다.
예술
뇌과학자이자 소설가인 에릭 호엘 교수는 예술과 꿈은 비슷한 생물학적 기능을 가지고 있다는 가설을 제안했다. 예술을 시작하기 전 인간은 꿈을 꾸었다. 꿈은 왜 꾸는 걸까? 꿈의 진정한 생물학적 기능은 무엇일까?
호엘 교수는 기계학습/딥러닝 기술을 통해 꿈과 예술의 생물학적 기능에 대한 중요한 힌트를 얻을 수 있다고 제안한다.
딥러닝 기술은 학습 데이터를 필요로 하는데, 데이터 확률분포의 폭이 너무 좁으면, 특정 데이터에 대한 편파적 성향이 만들어질 수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임의적 영역 추출 domain randomization이라는 방법을 사용한다. 현실에서 얻은 데이터를 임의적으로 재 샘플 하고 왜곡하면 직접 경험 가능한 데이터 범위를 넘어 학습과 경험의 폭이 넓어질 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꿈 역시 비슷한 임의적 영역 추출 역할을 하는 게 아닐까? 꿈은 수많은 해석과 의미가 가능한 현실의 확장이자 왜곡된 버전이다. 우리가 직접 경험할 수 있는 현실의 폭은 제한적이기에, 꿈이라는 재 샘플링 방식을 통해 뇌는 학습능력을 향상시켰는지도 모른다. 망막에 비치는 현실의 왜곡과 변형을 통해 뇌 신경망을 더 효율적으로 학습시키는 임의적 영역 추출이 바로 예술의 생물학적 역할이라는 것이다.
예술은 결국 외향적 꿈이고 꿈은 내향적 예술 인지도 모르겠다.
인공지능, 타행성으로 이주를 준비하는 인류는 눈에 보이는 현실에서의 학습 데이터만으로 준비할 수 없는 미래이기에 우리는 더 많이, 더 과감한 예술을 필요로 한다. 논란과 충격을 통해 인류가 꿀 수 있는 꿈의 깊이와 폭을 넓혀주는 예술이 절실한 시대이다.
타 인문학 서적과 비교 분석해보고 싶었지만 여의치 않아
일단 인상 깊은 부분만 요약해보았다.
책의 본문을 전부 파란색 글자로 디자인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읽는데 특별히 방해되진 않았다.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저자의 관점에 부합하는 디자인일까?
<노동의 정상화> 챕터는 깊은 인상을 남겼다. 때마침 영화 듄을 보고 있었는데 마저 보아야겠다. 저런 미래를 준비하려면 인류는 노동에서 벗어나야 할지 진지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