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마음에도 내진설계가 필요하다

지진은 항상 삶 속에 있다

by 흥미진진한 독자

아이를 키우다 보면 아이가 엄마를 성장시키는 순간이 있다. 그냥 툭 던진 말인데 가슴에 비수가 되어 꽂히기도 하고, 생각 깊은 말에 잔잔한 감동이 밀려오기도 한다. 인 든 건가 싶어 뿌듯할 때도 있다

오늘은 아들의 한 마디 말로 일희일비했다.


중1은 자유학기제로 성적 없는 즐거운 학교생활을 했다. 코로나와 함께 보낸 중1 생활은 유야무야 잔잔하게 흘러갔다.


중2가 되자 삶에 큰 변화가 생겼다. 중2병이라는 무서운 질병에 감염될 나이에 중2병만큼이나 공포스러운 존재가 있었으니, 그것은 '성적표'였다.


중1과 달리 학교 성적이 데이터로 명확하게 나타나며, 과목별 아이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객관적인 자료를 처음으로 만나게 는 순간이 중2다. 우리 아이는 어느 정도 일까? 궁금하기도 했지만 처음 받는 성적표는 엄마를 설레게 했다. 항상 처음은 긴장감과 셀렘을 동시에 가져다준다.


그동안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고, 잘 놀고 '4잘'을 몸소 실천해 오고 있는 분위기였지만 그래도 시험 성적에 관심이 집중되는 걸로 보니 나도 '학'부모인가 보다.




시험을 앞두고 아이가 질문을 했다.


"엄마는 성적을 몇 점 받아야 평균이라고 생각하세요?"


"그야 시험 난이도에 따라 다르지만 70점 정도가 반 평균 아닐까?"


"엄마 산수 못하시나 봐요. 100점이 만점이니 평균은 50이죠, 50점 맞으면 평균은 받은 거죠? 그 정도면 평범한 거죠?"


"어...(당황) 그렇기도 하네."

(50점을 평균으로 생각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음)




해맑고 순수하게 웃으며 이야기하는 아이 얼굴에다 표준편차와 시험 난이도에 따른 상대적인 평균 이야기를 할 수는 없었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는 그런 상황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중간고사 성적을 정말 절대적 평균 정도로 받아왔지만 아이는 걱정 없이 행복해했다.

걱정은 늘 엄마의 몫이었다.




시간이 흘러 성적표의 충격이 사라질 때쯤 언뜻 지나가는 말로

"우리 아들 참 중2답지 않게 귀엽게 행동하고 귀엽게 생겼군."이라고 한 마디 던졌다.

(청소년이지만 아직도 엄마눈에는 귀엽다)


순간 1초도 지나지 않았는데 '성적은 귀엽지 않죠?'라고 이야기한다.


'옳거니... 너도 성적이 심각하다고 속으로는 생각하고 있었구나. 엄마에게 성적표를 보여주며 웃어 보인 얼굴이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었구나! 그럼 그렇지.

티 나지 않았지만 본인 나름대로 고민하고, 반성도 했나 보구나. 기특하다 우리 아들. 반성이 있으면 발전이 있다고 하지 않던가. 앞으로 성적이 오를 것이라는 희망이 보이는구나.'


하지만 아들의 마지막 말에 나의 행복한 추측과 아름다운 공상은 그야말로 물거품이 되어 사라지고 있었다.


엄마~ 지진 날 때 건물에 내진설계가 되어있으면 건물이 무너지지 않잖아요. 엄마의 마음에도 내진설계가 필요해요. '성적'내진설계요.


어안이 벙벙했다. 열심히 해서 성적을 올리겠다는 다짐이 아니라 앞으로 더 흔들릴 테니 대비하고 있으란 소리였다. 나는 웃는지 우는지 모를 미소를 지어 보였다.




'과학자는 우주의 한 점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보고, 시인은 시간의 한 점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느낀다. <생각의 탄생 中>'라는 말이 있다.


그렇다면

엄마는 아이의 한마디 말에서 아이의 마음을 읽고, 한 번의 눈 빛에서 아이의 마음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마음의 내진설계'라는 표현이 엄마가 자기 성적으로 상처받기를 원하지 않았던 아이의 '배려심'이었다고 생각한다.


오늘도 아이에게 배웠다.

'고통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지 말자. 모든 사건은 마음의 내진설계로 충격을 완화할 수 있다.'


'숫자에 현혹되지 말자, 숫자로 담을 수 없는 무량수(無量數)의 가치가 우리 아이에게 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이상 온도가 감지되었습니다(ft. 냉장고의 눈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