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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흥미진진한 독자 Oct 30. 2023

집안일도 하청이 있습니다.

남편의 게으름과 아들의 효도는 정비례

아이들이 청소년이 되면서 집안일에 함께 하고 있다. 아니 어쩌다 동참하게 되었다.

맞벌이다 보니 집안일을 남편에게 자연스럽게 시키게 되었고 게으른 남편은 본인이 움직이기 싫어서 다시 아들에게 그 일을 시키는 구조가 된 것이다. 한 마디로 집안일 하청구조가 생긴 것이다. 엄마가 아빠에게 시킨 일을 뒤돌아보면 어느새 아들이 하고 있다.


남편 논리는

요즘은 남자들도 집안일을 잘해야 한다.
(그럼, 본인은?)


그래야 나중에 며느리에게 욕먹지 않는다.
(나도 시어머니께 반품 문의 드리고 싶다.)


그러니 지금부터 해봐야 나중에도 잘한다는 것이다.

그냥 본인이 하기 싫어서 핑계가 산이다.


중학교에 입학 한 후로 덩치도 점점 커지고 든든해진 김에 집안일도 든든하게 시키고 있다.

주말 아침 한 끼 만은 남편이 해줬으면 하는 바람도 이제는 꿈꾸지 않는다. 남편은 '울타리'라는 친정엄마의 말씀을 마음속에 새기며 울타리처럼 가만히 집에 꽂아 놓고 있다. (컴퓨터 앞에 항상 잘 꽂혀있다)


아이들은 주말 아침에 엄마가 밥 하기 싫어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주말 아침에 일어나면 건조기에 있는 세탁물을 꺼내어 빨래를 개어 놓기도 한다. 이유는 엄마가 일어났을 때 기분 좋게 해 주기 위해서라고 한다. 말썽꾸러기 아이들이지만 한번씩 감동을 주는 포인트가 있다. 이 맛에 자식 키우는가 싶다.


전날 꺼내 놓은 빨래를 큰 녀석이 열심히 개고 있는데 둘째가 개구쟁이 미소를 띠며 건조기에서 빨래를 한 바구니 더 꺼내어 엎어 놓는다. 그리고 하는 말


"이게 끝인 줄 아셨죠? 빨래 리필 왔습니다~"


음료 리필, 커피 리필, 무한리필의 refill은 설레는 단어인데 빨래 리필은 노동의 고단함이 느껴지는 마음 짠한 리필이다. 시시포스가 돌을 밀어 올리는 것과 같은 마음가짐으로 아이들은 빨래를 개면서 삶을 견뎌 내는 인내심을 기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은 빨래 중에 가장 개기 어려운 게 엄마 속옷이라고 한다. 엄마의 팬티 속옷을 제대로 갤 줄 몰라 신발 끈 묶듯이 묶어놓았다. 나중에 양말인가 싶어 보니 사탕 모양으로 고이 묶인 내 팬티였다.


이러면 어떻고 저러면 어떠리~.


빨래를 개어 주는 것만도 감지덕지인데, 묶여있는 팬티쯤이야 아이들이 엄마에게 준 선물이라 생각하고 포장 풀듯이 풀어 입으면 그뿐인 것을.

시시포스가 오르는 산처럼 산더미로 쌓인 빨래들(리필 전)


아빠는 집안일을 아들에게 하청주지만 아들은 집안일을 승화시켜 효도로 갚고 있다. 내 아들이 시어머니 아들보다 더 멋진 것 같은데 왠지 미안한 이 기분은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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