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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흥미진진한 독자 Nov 06. 2023

친정엄마가 소고기를 택배로 보낸 이유

우리 집 사전에 고기 외식은 없다. 아니 외식 자체를 잘하지 않는다. 어릴 때는 아이에게 깨끗하고 좋은 음식 먹이겠다고 집에서 밥을 해 먹였고, 밖에서 밥 사 먹고 다니면 돈을 모으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그런지 가성비로 따져 보았을 때도 집밥만 한 것이 없었다. 다만 엄마의 희생이 필요하다는 것이 큰 단점이고 그 희생을 내가 해야 한다는 것이 문제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점점 대식가가 되어간다. 키 180cm 쌍둥이 아들의 먹성은 쌀을 쌀통에 붓기 무섭게 금방 바닥을 보이는 기염을 토해낸다. 이런 먹성인데 고깃집에서 외식한다는 것은 집안 살림 거덜 날 일이 분명하다. 이런저런 이유로 외식을 한 달에 한두 번 할까 말까인데 더군다나 고기 외식은 못 한 지 10년이 훨씬 넘은 거 같다. 각종 SNS에 식당에서 고기 굽는 사진을 찍어 올린 것을 보면 솔직히 부러운 마음이 올라온다. 숯불에 굽는 고기 나도 먹고 싶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명륜진사갈비는 3년 전에 먹으러 갔었다)


이러한 사정일진대 소고기를 밖에서 사 먹는다는 건 우리 집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다. 아니 한우 자체를 돈 주고 사본 일이 없다. 기껏해야 미역국이나 뭇국에 넣을 한우를 소량 사는 것이 전부였다. 구워 먹는 안심, 등심은 언감생심이다.


좋은 일이 생기거나 아버지께서 보너스를 받아오시면 손자들 고기 사 먹으라고 용돈을 주실 때가 있다. 그럴 때도 한우는 한 번도 내 돈 주고 사본 일이 없다. 그런 살림살이를 친정어머니께서 아시고는 택배로 소고기를 부쳐 주셨다. 돈으로 줘봤자 사 먹지 않을 것임을 알기에 아예 고기를 사서 보내신 것이다.


손자들은 한우를 보고 신이 났다. 엄마 아빠는 미국 소나 호주 소만을 사주기에 한우는 의례 할머니, 할아버지가 사준다는 것을 알아서인지 고기를 보고는 엄마가 산 고기가 아님을 바로 알아챈다.


친정엄마의 한우 선물 덕분에 손자들은 아침부터 고기를 한 판 구워서 밥 한 공기를 뚝딱 비우고 등교한다. 아침부터 고기 구워 먹는 집이 우리 집이다.


아침부터 고기를 구워주는 이유는 아이들이 먹고 싶어서이기도 하지만 더 오래 고기를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무슨 말이냐고? 아침에는 한 팩이면 한 끼를 먹는데 저녁에는 2팩은 구워야 한 끼를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침에 먹는 한우가 더 여운이 길다.


한동안 아이들은 고기로 배를 채우고 나는 친정엄마의 사랑으로 아침을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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