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에 참새가 들어왔는데, 창문으로 나가려다가 유리에 머리를 박고 교실 바닥에 떨어졌어. 그래서 얼른 손으로 잡아 감싸줬어. 참새가 우리 집 앵순이 반도 안될 정도로 작았어."
그렇다. 운 나쁘게 교실 안으로 들어왔던 참새가 밖으로 나가려다 창문 유리에 머리를 박고 기절해 버려서 아들이 참새를 잡을 수 있었다. 다른 친구들은 만질 생각도 못 하는데 우리는 새를 키우고 있는 앵집사들이라 거리낌 없이 새를 손으로 만질 수 있었다. 조류는 강한 부리를 가지고 있어서 쪼이거나 물릴 수 있다는 공포 때문에 선뜻 만지기 쉽지 않은데 아들은 새가 죽었을까 봐 상태 파악을 위해 새를 조심스럽게 손으로 안아주었다. 다행히 심장이 '콩닥콩닥' 뛰는 게 느껴져서 죽지 않았구나 싶었다고 한다. 새가 불안하지 않고 편안하게 휴식할 수 있게 손안에 계속 품고 있었다, 마치 집에 있는 앵순이를 대하듯이.
좌 참새 / 우 앵순이
참새는 한동안 그 상태 그대로 있었다고 한다. 심장이 뛰고 있으니 기절한 것으로 판단해 안정을 취하면 움직일 수 있을 것이라 아들은 확신했다고 한다. 곧 참새가 꿈틀꿈틀하는 게 느껴졌고 새가 푸드덕거려 정신을 차렸구나 싶어 기뻤다고 한다.
(주변 친구들이 호들갑을 떨었을 텐데. 새가 시끄러워서 정신이 번쩍 들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와글와글 청소년들의 목소리 톤 모두 알지 않는가.^^;;)
창가에 가서 오므리고 있던 손을 펼치니 참새는 깃털 정리를 몇 번 하고 포르르 밖으로 날아가 나무에 앉아서 뒤를 한 번 돌아보고 다시 날아갔다고 한다. 아들은 새가 뒤로 돌아본 것을 자신에게 인사해 주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새가 아이들 교실에서 죽지 않아 다행이고, 새의 상태를 살펴봐 줄 수 있는 사람이 그 자리에 있어서 다행이었다. 새가 유리에 부딪히면 목이 부러져서 그 자리에서 즉사하거나 뇌진탕 증상이 오기도 하는데, 참새가 운이 좋았다.
아들의 참새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남편은 본인도 길에 죽어있는 새 사체를 치워 주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길에 죽어있는 사체를 보면 기분 나빠하고 징그러워한다. 죽은 새지만 차가운 길바닥에서 그런 대우를 받는 모습이 싫었던 건지 새의 사체를 화단 낙엽 있는 곳으로 옮겨주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나도 몇 달 전에 건물 안으로 박새가 들어왔다는 제보를 받고 용수철처럼 벌떡 일어나서 박새를 구하러 맨손으로 달려간 적이 있었다. (보통 사람들은 도구나 박스부터 찾았다)
앵순이 덕분에 온 가족이 날개 달린 짐승에 대한 연민과 사랑이 충만한 사람이 되었다. 날개 있는 짐승에게 자연스럽게 손 내밀어 주는 마음을 미루어 나가 모든 생명이 있는 것을 사랑하고 이해하는 마음씨를 지닌 아이로 자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