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흥미진진한 독자 Nov 21. 2023

언젠가는 헤어지겠지만

반려동물과의 이별연습

 

반려동물은 인간보다 수명이 짧다. 언젠가는 앵순이가 없는 삶을 살아야 하는 순간이 존재할 것임은 분명하다. 새는 어디가 아픈지 티가 나지도 않으며 병에 걸렸는지도 쉽게 알 수가 없다고 한다. 자연에서는 아픈 티가 나는 순간 사냥의 대상이 되기 때문에 아픈 것도 잠 숨기는 쪽으로 진화해 온 탓이다. 집사들이 알아채기도 전데 병에 걸려 어느 날, 어느 순간 낙조해서 죽는 경우가 많은 이유다. 그래서 앵순이의 죽음에 대한 공포를 미리 상상하지 않을 수 없다. 죽음을 받아들일 시간을 주지 않고 훌쩍 세상을 떠나기도 하는 반려동물이 앵무새이기 때문이다.


새라면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녀야 하는데 우리와 함께 살면서 불행해진 건 아닐까 고민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어느 과학자가 자연사라는 말은 평온한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을 듣고는 조금 위로가 되었다. 자연사는 '자연스럽게 수명을 다하고 죽는다'는 뜻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연에서 죽는다는 것은 누구의 입에 들어가거나, 병에 걸려 죽거나, 다쳐서 죽게 되는 경우를 자연사라 일컫는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자연에서는 수명대로 살고 죽는 죽음은 없다는 의미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반려동물로 살면서 천수를 누리고 죽는다면 그 또한 행복한 조생(鳥生)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삶을 선택했다면 다른 것은 고민하지 말고 살아있는 동안 충분히 사랑받으며 살도록 해준다면 자연 속에서 사는 삶만큼 의미가 있을 것이다. 생이 짧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순간순간을 소중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마음껏 사랑할 것이다.


작은 사랑을 큰 사랑으로 만들어 준 ‘말이 필요 없는 교감’ 덕분에 앵집사의 삶이 윤택해졌다. 내가 이만큼 행복하니 앵순이도 이만큼은 행복하다고 확신할 수 있다. 어떻게 알 수 있냐고?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텔레파시 주파수가 서로 맞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간질간질한 감정의 공유가 실존한다.


서로 바라볼 수 있고,

서로 만질 수 있고,

서로 느낄 수 있는 지금,

우리 마음껏 사랑하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