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똥손이었던 과거를 세탁하고자 어른이 되어 미술 학원을 기웃거렸다. 미술도 분야가 여러 갈래가 있어서 고민 끝에 전통 회화 분야인 민화를 배우겠다고 마음먹고 민화 교실을 찾아갔다. 미술 책에서 보던 전통 민화 그림에서부터 자신이 아끼는 사물이나 반려동물까지 다양한 소재로 그림을 그릴 수 있어서 마음에 들었다.
반려동물인 앵순이를 예쁘게 그려 멋있는 작품으로 만들어 주겠다는 목표가 저절로 생겼다. 다른 분들이 그려 놓은 반려동물 사진이 너무 예뻐 보였고, 귀여운 동물들이 그림 속에서도 여전히 빛나고 있어 눈길을 사로잡았다.
"우리 앵순이도 저렇게 예쁘게 그려줘야지!"
문제는 내 그림 실력이었다. 첫 작품을 거창하게 마음먹고 시작했으나 '범을 그리다 실패하여 개와 비슷하게(描虎類犬)' 된 꼴이 되었다. 8등신 비율을 자랑하는 앵순이를 5등신의 머리 큰 앵무새로 그려버렸다. 6주 가까이 정성 들여 그린 그림인데 마음이 아프다.
<앵순이가 얘는 누구냐며 쳐다본다. 그러고는 가까이 가지도 않는다. 앵순이에게 외면당한 앵순이 그림>
머리는 원래 크기보다 더 크고 꼬리는 원래 길이보다 더 짧아졌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신체 비율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그림 중에 아주 잘된 부분이 한 곳 있다. 바로 눈! 당연히 내가 그리지 않았다. 중요한 부분을 가장 마지막에 그려 그림을 완성해야 하는 데 선생님께서도 불안하셨는지 눈은 직접 그려주셨다. 눈은 모든 생명의 정수다! 잘못 그리면 그림전체가 무너지게 된다. 만약 선생님이 그려주지 않고 내가 직접 눈을 그렸다면 일명 '동태 눈알'이 되어 생기마저 사라졌을 것이다.선생님의 손길로 앵순이가 생명력을 되찾았다. 눈 만 보면 그림 속에서 튀어나올 것 같다.
앵순이를 5등신으로 그려놓아 미안한 마음에 멋있는 작품 속 주인공으로 만들어 줄 방법을 궁리하다 한 편의 시가 생각났다. 그림도 중요하지만 스토리텔링이 중요한 시대이지 않던가. 매력적인 스토리나 사건은 기억에 오래 남는다고 하니 부족한 그림이지만 스토리를 입혀 앵순이를 돋보이게 할 생각으로 예정에 없던 한시 한 편을 그림 속에 추가하게 되었다. 일명 성삼문이 쓴 <매화>라는 시다.
성삼문(成三問) 선생이 명나라에 사신으로 갔을 때 황제가 선생의 능력을 시험하려고 병풍 하나를 내보였는데, 병풍 속 그림은 어떤 것은 진홍색이고 어떤 것은 분홍색인 매화와 꽃가지 사이에 앵무새 한 마리가 앉아 있는 그림이었다.
황제는 병풍에 그려진 그림을 보여주면서 한 그루 나무에 핀 꽃의 색이 다른 이유를 시로 표현하라고 명한다. 조선에서 온 사신을 당황스럽게 하려고 일부러 억지 질문을 한 것이다. 황제는 변방 지역에서 온 사신이라 깔보는 마음이 있었던 듯싶다. 하지만 성삼문은 멋있게 시 한 편으로 반격에 성공한다. 그 시가 아래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