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터디 카페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아들은 자신이 열심히 공부했음을 티 내기 위해 다른 친구들의 공부 태도를 지적한다.
"엄마, 애들이 독서실 책상에 앉아서 핸드폰만 쳐다보는 경우가 많아. 그런데 나는 핸드폰이 없어서 책을 봤어."
"책 내용을 공부하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쳐다보기만 했을 거 같은데?" (집중해서 공부했을 거라 생각하지 않은 현실 엄마의 대답)
"아니야, 진짜 공부했어. 엄마, 독서실에 3시간 동안 핸드폰 없이 있어봐. 심심해서 책을 보게 된다니까! 시험 기간에는 핸드폰 없는 게 확실히 도움이 되는 거 같아."
아이들의 핸드폰 없는 삶이 길어질수록 불만, 불편에 대한 이야기보다 긍정적인 부분에 대한 표현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1년 전만 해도 '노폰'의 삶이 주는 단절과 불편함에 대한 투정이 많았는데, 어느덧 포기한 것인지, 적응한 것인지 긍정적인 삶의 태도로 전환된 느낌이다.
핸드폰이 없어서 공부에 덕을 봤다는 아들의 판단은 그냥 느낌이 아니라 과학적으로도 근거가 있다.
핸드폰이 없으면 집중하는 과정에서 쓸모없는 자극을 받지 않아서 좋다. 핸드폰에 알람이 왔다. 카톡일 수도 있고, SNS일 수도 있다. 공부하는 도중 알람이 왔다는 사실을 알고도 핸드폰을 만지지 않을 수 있는 청소년은 몇 % 일까?
자제력이 강한 아이가 있어 핸드폰을 확인하지 않고 참았다고 하자. 그렇다면 공부에 전혀 방해받지 않았다고 할 수 있는가?
정답은 핸드폰을 만지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공부에 방해받았다고 봐야 한다. 공부에 집중할 정신에너지를 '핸드폰에 관심을 두지 않으려 자제하는 인내심'에 써서 집중력이 흐트러졌기 때문이다.
인간의 뇌 용량은 제한적이고 특정한 일을 수행하기 위한 정보 저리 능력도 한정적이다. 핸드폰의 진동과 알림은 자연스럽게 주의력의 흩어버리고 정보 처리과정을 방해한다. 산을 오르기는 어렵지만 내려오는 건 쉽듯이, 몰입하기는 어렵고 몰입이 깨기 지는 매우 쉽다. 그 주범이 핸드폰인 경우가 많은데 핸드폰 없이 독서실을 갔으니, 아들이 말한 '공부했다.'는 말은 객관적으로 보면 조금 믿어 줄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핸드폰은 단순히 가까이 있는 것만으로도 집중력이 떨어질 수 있다고 한다. 심지어 전원을 꺼두었는데도 말이다. 연구자들의 실험에 따르면, 핸드폰이 책상 위에 있을 때, 주머니나 가방에 있을 때, 다른 공간에 있을 때 세 가지 조건에서 살펴보면 핸드폰이 가까이 있을수록 작업 기억과 유동성 지능에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단순히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인지 처리에 영향을 받는다고 하니 실험 결과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현대사회의 필수품인 핸드폰. 그 능력의 한계가 궁금해질 정도로 무궁무진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 작은 기계 하나로 음악, 영화, 문서작업, 회의, 정보검색, 상품 결제, 은행 대출, 본인인증 등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그렇다 보니 기계에 의존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커지고 없으면 불안해지는 심리적 증상도 생겼다.
사람들은 하루에 2,600번 휴대전화를 만진다고 한다. 그만큼 많을까 싶기도 하지만 길을 갈 때도, 친구들과 이야기할 때도, 식사할 때도 손에서 핸드폰을 놓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 과장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스티브 잡스는 아이들의 모바일 기기 사용 시간을 엄격하게 통제한다고 한다. 자신이 만든 제품을 엄격하게 통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당연히 중독의 위험성을 알고 있어서다. 그뿐만 아니라 빌 게이츠도 자녀가 14세까지 아이에게 휴대전화 사용을 금지했다고 한다. 기술 개발뿐만 아니라 발전된 기술이 사람들에게 미칠 영향도 이들은 앞서서 알고 있었다.
아들아!
엄마 아빠가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처럼 부자는 아니지만 더 앞서(?) 나간 점도 있구나. 무슨 말이냐고?
스티브 잡스는 모바일 기기 사용 시간을 통제했지만, 엄마·아빠는 모바일 자체를 주지 않았고, 빌 게이츠는 14세 전까지 휴대전화 사용을 금지했지만, 너희들은 16세인 지금도 사용 못하고 있으니, 잡스와 게이츠보다 엄마·아빠가 더 나은 거 같은데?
아마 아들은 지나쳐서 도리어 탈이라고 여길 것이다.
핸드폰 없이 사는 둥이들은 어쩌면 공부할 수 있는 최상의 환경 속에 놓여 있는지도 모르겠다. 본인들이 마음만 먹으면 되는데 그 마음이 아직 미숙하다.
옛날에 맹자 어머니는 자녀 교육을 위해 세 번이나 이사했다고 한다. 핸드폰이 없어 남들보다 더 집중해서 공부할 수 있었다는 아들 말을 들으니 맹자 어머니처럼 이사는 못 해주더라도 '삼천(三遷)'의 효과는 '노폰'으로 구현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