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아빠 모두 문과 출신이어서 그런지 쌍둥이 아들 두 명 모두 수학에 관심이 없다. 관심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시험 기간조차 외면받는 학문이 되었다.
큰 둥이는 필사의 각오로 수학을 하더니 그나마 작은 둥이보다는 높은 점수를 받아 왔다. 하지만 도토리 키재기다. 엄마, 아빠가 문과 출신이기는 하지만 살면서 이런 수학 점수를 집에서 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진즉 아들의 수학 점수만큼은 마음에 두지 않으려는 노력을 통해 해탈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생각했는데, 침대에 떡하니 올려져 있는 시험지를 눈으로 보니 마음이 헛헛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이번 기말고사 시험지를 처음 보았을 때 깜짝 놀랐다. 89점이라고? 설마? 진짜?
역시나 내 아들이었다. 89점이 아니라 49점이었다. 그래, 이게 정상이지. 엄마의 헛된 희망이 숫자도 잘못 보게 만들었나 보다. 수치화된 점수에 해탈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멀었다. 현실을 외면하고 싶었던 걸까. 아무리 봐도 49점인 점수가 왜 순간 89점으로 보였을까. 혼자 한동안 웃었다.
49점 받은 수학 시험지에 그려놓은 그림들이 단순한 낙서가 아니라 하나의 상징으로 다가온다.
새와 오리를 그려 놓은 걸 보니 시험 문제를 다 풀고 나서 '나는 새대가리'라고 자책한 건 아닐지 추측해 본다. 아들에게 미안하지만, 아니라고는 못 하겠다. 왜냐하면 49점도 중간고사에 비해 오른 점수이기 때문이다. 하하하! 그저 웃지요.
탱크를 자세히 보면 수학이라는 글자가 숨어있다
자세히 보니 새 표정도 모두 다르다. 새 두 마리는 수학 문제 풀다가 눈 돌아가는 자기 모습을, 한 마리는 시험이 끝나서 기쁜 마음을 투영한 그림 같다.
밥 잘 먹고, 일찍 잘 일어나고, 효심 깊은 아들인데 공부까지 잘하면 인간미가 없지. 우리 아들은 인간미 넘치는 아름다운 피조물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