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운동화를 세탁해야 할 시기가 왔다. 하지만 엄마가 허리를 삐끗해 한의원 다니며 침을 맞는 중이라 몸을 숙여 항공모함 같은 신발을 빨아낼 자신이 없어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아이들 운동화에서 나는 본인 발냄새를 자각할 정도까지 상황이 악화되자 차선책으로 신발 세탁해 주는 운동화 세탁소에 맡겨보기로 마음먹었다. 한 켤레에 8천 원 정도며 며칠 기다려야 하는 불편함이 있지만, 허리 숙이기가 힘든 상황이라 돈을 좀 써보기로 했다.
아이들 운동화를 챙겨 출근했는데 퇴근할 때 맡기고 오는 걸 깜빡해서 차에 다시 싣고 집으로 돌아와 버렸다. 때마침 아들은 주말에 친구들과 찜질방 약속이 있어 찜질방 입장 비용만 엄마가 대주고, 간식이나 놀이비용은 본인 용돈으로 해결하라고 한 상황이었다.아들의 현금 부족을 알고 있던 엄마는 아들을 살짝 꼬셔본다.
"아들아, 신발 한 켤레 빠는데 5천 원을 용돈으로 줄게. 어때? 너의 노동력으로 버는 용돈이니 피시방에 가서 돈 써도 아무 말하지 않을게"
8천 원 드는 비용을 5천 원으로 때울 수 있겠다는 엄마의 바람으로 제안했지만, 아들은 시큰둥 반응이 없다. 그러나 몇 시간 뒤 큰 둥이가 두 켤레 모두 빨면 1만 원 주는 거냐며 재차 확인을 하더니 고무장갑을 착용하고 어떻게 하면 되는지 물어온다. 엄마는 이때다 싶어 자세히 설명해 준다.
아들의 신발에는 항상 모래가 한 줌은 들어 있으므로 화장실을 막히지 않게 하기 위해 반드시 모래부터 제거해야 한다. 깔창 밑에 이렇게 많은 모래가 들어갈 수 있다는 것에 놀라곤 한다.
40여 분 동안의 사투 끝에 운동화 두 켤레를 깨끗하게 빨고 뒷정리까지 한다. 예전에는 뭐든 시키면 뒷정리를 엄마가 꼭 한 번 더 해야 했는데 이제는 알아서 척척 뒷정리도 깔끔하게 한다. 아이들이 조금 컸음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또 놀란 점은 엄마가 운동화를 빨았을 때보다 어째 더 하얗고 깨끗하다는 것이다. 흰 운동화는 빨기 힘들어서 안 사주는데 큰 녀석이 한 참 멋 부리고 싶어 하는 마음이 생겨 처음으로 흰색 운동화를 졸라서 샀고, 오늘 본인이 처음 세탁해 본 것이다.아들은힘이 좋아서 그런지 운동화를 깨끗하게 세척했다.엄마는 뿌듯한데 아들은 힘들었는지 다음부터는 절대 흰색 운동화를 사지 않겠다고 한다.자업자득이다. 역시 본인이 직접 노동을 해봐야 상대방의 힘든 부분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는 법이다.
운동화를 빠는 내내 앵순이가 오빠와 함께 해준다. 뭐 하는지 궁금했나 보다. 오빠 무릎 위에 앉아서도 쳐다보고 있다. 덕분에 오빠의 노동 현장이 덜 힘들었다. 세척한 운동화를 검사 맡고 당당하게 알바비 1만 원을 받아 간다. 딱 1시간 시급만큼의 돈이다.
사람 마음은 참 간사하다.
처음 시킬 때는 두 켤레 16,000원을 10,000원으로 해결할 수 있겠다 싶어서 좋았는데, 현금 1만 원을 지불하고 보니 '본인이 신은 운동화를 본인이 빠는데 왜 돈을 줘야 하지?'라는 마음이 올라온다.
오늘 큰 둥이의 능력 하나를 발견했다. 아직 어려서 못할 것이라는 생각은 엄마의 노파심이었다. 그 누구보다 완벽하게 운동화를 세탁할 수 있는 세탁장인이 우리 집에 있었다. 앞으로 종종 그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자주 부여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