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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흥미진진한 독자 Dec 06. 2023

자린고비 남편의 사은품 사랑

사은품은 특별한 사람만 받는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 집 '남의 '님은 종종 색다른 사은품을 받아오기도 한다.


퇴근이 늦은 남편에게 택배가 왔다고 알리니 막 따면 안 된다는 주의 문자를 보내온다. 포토 후기를 써야 하므로 과정을 자세히 사진을 찍으면서 열어봐야 한다는 것이다. 아, 이런 게 언박싱이구나. 우리 집에도 언방싱하는 사람이 있었구나. 그저 신기하게 남편을 바라본다. 이런 일이 한 번씩 있어 이제는 남편 택배는 뜯지 않고 두는 편이다. 사실은 정리하기 귀찮아서이기도 하다.


제품을 2개 샀다고 포토 후기를 두 번 작성해서 올렸나 보다. 얼마나 열심히 썼길래 두 번 모두 사은품을 받았다. 문제는 똑같은 제품이라는 것! 당근에 팔아야 할까 보다. 사은품으로 받았지만, 안 쓰는 물건이 쌓이고 있다.


남편이 독서실 가서 컴퓨터게임을 하겠다며 노트북을 샀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것 같았지만 노트북이 필요하기도 했다. 컴퓨터 사양을 비교해 가며 몇 날 며칠을 쇼핑하더니 드디어 결재했나 보다.. 결재 문자가 날아온다. 남편 물건을 살 때 내 아이디와 내 카드로 사기 때문에 어떤 물건을 얼마 주고 샀는지 모두 알 수 있다.


소비를 한쪽으로 몰아야 연말정산에 유리하다는데 내 정신건강에는 유리한 점을 찾을 수가 없다. 눈 뜨고 있는데 코 베어 가는 남편이다. 노트북에 어울리는 사은품을 또 받아왔다. 알뜰하게 잘 소비하는 자린고비 남편이다.


컴퓨터 모니터를 새로 구매했다. 옛날에는 모니터가 비쌌는데 요즘은 20만 원 대면 눈도 보호되는 모니터를 살 수 있어서 큰마음먹고 한 번 바꾸기로 했다. 남편은 택배가 온 날 언박싱을 열심히 하더니 며칠 뒤에 PC방에서나 볼 수 있는 헤드셋을 사은품으로 받아 왔다. 아이들이 집에서 게임을 할 때 유용하게 잘 활용하고 있다. 이 헤드셋 하나면 거실이 PC방 분위기로 바뀐다.


전자제품 사더니 한 달이 지나 사은품이라고 가방이 왔다. 디자인만 다른 칙칙한 검은색 가방이었다. 무장 공비가 메고 다닐 것 같이 못생겼다. 쓸 일이 없을 것 같아 창고에 넣어 놨는데, 지금은 아들이 잘 메고 다닌다. 처음에 사은품이 왔을 때 남편은 가방을 2개나 받고도 기분 나빠했다. 원래는 커피 메이커를 받기로 했었는데 재고가 없다고 가방 2개로 때운 것이라고 한다. 앗! 나도 커피 메이커가 더 좋은데.


물건뿐만 아니라 커피 쿠폰도 잘 받아온다. 한 번은 궁금해서 리뷰나 언박싱 글을 찾아서 본 적이 있다. 남편이 글을 이렇게 잘 쓰는 사람이었는지 처음 알았다. 꼼꼼하고 자세한 설명까지 덧붙여 누구보다 길고 정성스럽게 후기를 작성하고 있었다.


사은품은 공짜가 아니었다.


시간 들이고 정성을 다해야 받을 수 있는 물건이 사은품(謝恩品)이다. 받은 은혜가 크기 때문에 준다는 물건이 사은품이니 역시 세상에 공짜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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