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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흥미진진한 독자 Oct 27. 2023

세일(sale)에 미친 남편

아낀 게 맞나요?

남편은 장을 잘 본다. 아니, 아내인 내가 장보기 하는 게 마음에 안 들어서 본인이 장보기를 잘하는 편이다. 1+1은 되어야 눈길을 주고, 할인하지 않으면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값이 싸면 대량 구매도 서슴지 않는다. 산적 같은 아들이 2명 있어서 음식 재료는 대량 구매해도 잘 사라지는 편이다.


아들 2명 뱃속을 고기로 채워주기 위해서는 일반 마트보다는 코스트코에서 판매하는 대용량 포장육을 구매하는 편이다. 덩어리 고기를 집에서 먹기 좋게 잘라야 한다는 점이 고역이긴 하다. 정육점 사장님처럼 고기를 재단하는 노하우가 없으니 물렁물렁한 고깃덩어리를 자르는 것이 이렇게 힘든 일인 줄 몰랐다. 몸에 좋지 않을 것 같은 지방과 비닐 막을 제거하고 먹기 좋은 크기로 썰다 보면 손목과 팔이 저리다. 하지만 엄마의 노동력으로 저렴하게 고기를 구입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어서 대용량 포장육을 산다.(남편이 내 눈치를 보며 산다. 고기 자르는 게 쉽지 않은 일임을 알기 때문이다.)


생고기가 최선이지만 보관할 수 있는 기간을 생각해 가공된 포장육도 종종 산다. 물론 할인할 때만 구매한다. 아들이 양념된 닭가슴살을 한 번 먹어보고 반해서 그 제품이 세일하기만을 학수고대 기다렸다. (장바구니에 입장하려면 세일은 필수조건이다.)


5개월 뒤 드디어 세일한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남편은 퇴근 후 바로 장을 보러 가겠다고 한다. 오랫동안 기다려 온 세일이니만큼 넉넉하게 구매해서 아들이 먹고 싶을 때 마음껏 먹을 기회가 드디어 왔다.


기쁨도 잠시! 남편이 구매해 온 물건을 보고 입이 떡 벌어졌다. 역시 상상을 초월하는 남편님이다.

광고 아님! 하림사장님 상주세요!

무려 12 봉지를 사 왔다. 이걸 냉장고에 어떻게 다 넣어! 심지어 냉동육이 아닌 유통기한이 3주 정도 여유 있는 냉장육이다. 아이들이 아무리 잘 먹는다 해도 먹다가 질려버릴 양이다.


3천 원 세일하는데 12봉 으니 36,000원 아꼈다. 그런데 맛있게 즐기며 먹을 수 있는 미각을 잃고, 비싼 냉장육을 냉동육으로 만들고, 냉장고에 빈틈없이 박아 넣는 바람에 냉장고가 매일 수고하고 있는 값을 생각하면 36,000원 아낀 게 정말 아낀 것일까?  잃은 거에 비해 아낀 돈이 저렴해 보이는 이유는 뭘까?


세일이 기쁨보다 공포로 다가온 하루였다. 만약 아들이 3주 후에도 닭가슴살을 다시 사달라고 한다면 이 제품은 정말 질리지 않고 먹을 수 있는 제품임이 입증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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