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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흥미진진한 독자 Dec 11. 2023

사계절 내내 하얀 눈이 내리는 집(앵무새가 머문 자리)

앵무새 비듬이야기

허공을 나는 새는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고 하던데, 허공을 날지 않고 앉아있는 새는 흔적을 왕창 남긴다.

앵순이가  앉은 흔적은 그녀가 왔다갔음을 확실히 알 수 있게 하는 증거들로 넘쳐난다. 하얀 가루와 털뭉치, 때로는 깃털도 함께 두고 간다.


앵무새는 편안하다고 느끼는 장소에서 털 고르기를 한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앵집사 옆에 딱 붙어서  털 고르기를 할 때가 많다. 서로에게 신뢰가 쌓였다는 증거지만 신뢰의 징표를 비듬으로 남겨준다. 심지어 강아지처럼 몸을 부르르 떨듯이 '타다탁' 털을 털어내기도 한다. 그때마다 하얀 가루가 눈꽃처럼 떨어진다.

이런 모습을 보면 터보의 <White Love - 스키장에서> 노래 가사가 떠오른다.

 하늘을 봐 하얗게 눈이 내려와 하얀 함박눈이
나비가 날아다니듯  하얀 눈꽃송이
세상이 온통 하얗게 옷을 갈아입고 있어~


하얀 눈꽃 가루가 사계절 내내 하늘에서 떨어지는 운치 있는 집이 여기 있다.




앵무새 비듬은 왜 생길까?


앵무새는 가시깃이라는 것이 있다.


피부에서 새로운 털이 나올 때 정상적으로 나올 수 있게 깃털을 감싸고 있는 껍질이 있다. 깃이 피부에서 모두 나오면 껍질 부분은 떨어지면서 가루가 되고, 사람들은 이것을 비듬이라 부른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집에서는 무선청소기가  필수 아이템으로 있어야 하는 이유다.


앵순이를 관찰하면 쉴 새 없이 깃털을 관리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새가 날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깃털이므로 평상시에 항상 깃털 정리하느라 바쁘다. 하늘을 나는 행위도 준비 없이는 할 수 없다.


앵순이 몸 구석구석을 쓰다듬다 보면 피부 속에 가시 깃이 있다는 감촉이 느껴질 때가 있다. 그 부분을 비벼주면 앵순이가 좋아한다. 가려운 등을 긁어주는 느낌과 같을 것이다. 앵집사가 때로는 힘 조절에 실패해서 앵순이가 비명을 지를 때도 있다. 닭 털 뽑듯이 앵순이 털을 뽑을 뻔했다.


암수 서로 정답게 털을 골라주기도 하지만 앵순이는 싱글이기 때문에 집사의 손길을 더 좋아하는 것 같다. 뒤통수나 머리 부분에 나는 가시깃은 부리가 닿지 않기 때문에 집사가 비벼주면 시원한가 보다. 털이 뽑힐 뻔한 고통을 주는데도 계속 만져달라고 머리를 들이민다.




앵무새도 목욕을 한다고?


앵순이는 여름보다 겨울에 더 목욕을 자주 하는 것 같다. 화장실에서 손을 씻거나 주방에서 설거지하면 물소리를 듣고 날아온다. 보통 머리나 어깨에 앉아 있는데, 팔뚝을 타고 손으로 내려오면 목욕하고 싶다는 신호다. 겨울에는 이틀에 한 번 정도 목욕을 한다. 의외로 청결한 앵무새다.


반신욕을 즐기는 앵순이는 물이 다리 정도까지 차면 날개와 꼬리를 물속에 넣고 엄청난 속도로 깃털을 털어낸다. 본인이 만족할 만큼 목욕을 해야 그제야 물에서 나온다. 목욕 후 드라이기로 털을 말려주는 건 집사의 몫이다. 여름에는 따뜻해서 괜찮지만, 겨울에는 젖은 털을 오래 놔두면 감기에 걸리기 때문에 집사의 손길이 필요하다. 감기에 걸리면 저 작은 콧구멍에서 사람처럼 콧물이 나온다.



사람도 머리스타일에 따라 인상이 달라지는데 앵무새도 털 상태에 따라 미모가 달라진다. 볼품없이 홀딱 젖은 앵무새지만 앵집사 눈에는 그래도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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