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공을 나는 새는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고 하던데, 허공을 날지 않고 앉아있는 새는 흔적을 왕창 남긴다.
앵순이가 앉은 흔적은 그녀가 왔다갔음을 확실히 알 수 있게 하는 증거들로 넘쳐난다. 하얀 가루와 털뭉치, 때로는 깃털도 함께 두고 간다.
앵무새는 편안하다고 느끼는 장소에서 털 고르기를 한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앵집사 옆에 딱 붙어서 털 고르기를 할 때가 많다. 서로에게 신뢰가 쌓였다는 증거지만 신뢰의 징표를 비듬으로 남겨준다. 심지어 강아지처럼 몸을 부르르 떨듯이 '타다탁' 털을 털어내기도 한다. 그때마다 하얀 가루가 눈꽃처럼 떨어진다.
이런 모습을 보면 터보의 <White Love - 스키장에서> 노래 가사가 떠오른다.
하늘을 봐 하얗게 눈이 내려와 하얀 함박눈이 나비가 날아다니듯 하얀 눈꽃송이 세상이 온통 하얗게 옷을 갈아입고 있어~
하얀 눈꽃 가루가 사계절 내내 하늘에서 떨어지는 운치 있는 집이 여기 있다.
앵무새 비듬은 왜 생길까?
앵무새는 가시깃이라는 것이 있다.
피부에서 새로운 털이 나올 때 정상적으로 나올 수 있게 깃털을 감싸고 있는 껍질이 있다. 깃이 피부에서 모두 나오면 껍질 부분은 떨어지면서 가루가 되고, 사람들은 이것을 비듬이라 부른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집에서는 무선청소기가 필수 아이템으로 있어야 하는 이유다.
앵순이를 관찰하면 쉴 새 없이 깃털을 관리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새가 날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깃털이므로 평상시에 항상 깃털 정리하느라 바쁘다. 하늘을 나는 행위도 준비 없이는 할 수 없다.
앵순이 몸 구석구석을 쓰다듬다 보면 피부 속에 가시 깃이 있다는 감촉이 느껴질 때가 있다. 그 부분을 비벼주면 앵순이가 좋아한다. 가려운 등을 긁어주는 느낌과 같을 것이다. 앵집사가 때로는 힘 조절에 실패해서 앵순이가 비명을 지를 때도 있다. 닭 털 뽑듯이 앵순이 털을 뽑을 뻔했다.
암수 서로 정답게 털을 골라주기도 하지만 앵순이는 싱글이기 때문에 집사의 손길을 더 좋아하는 것 같다. 뒤통수나 머리 부분에 나는 가시깃은 부리가 닿지 않기 때문에 집사가 비벼주면 시원한가 보다. 털이 뽑힐 뻔한 고통을 주는데도 계속 만져달라고 머리를 들이민다.
앵무새도 목욕을 한다고?
앵순이는 여름보다 겨울에 더 목욕을 자주 하는 것 같다. 화장실에서 손을 씻거나 주방에서 설거지하면 물소리를 듣고 날아온다. 보통 머리나 어깨에 앉아 있는데, 팔뚝을 타고 손으로 내려오면 목욕하고 싶다는 신호다. 겨울에는 이틀에 한 번 정도 목욕을 한다. 의외로 청결한 앵무새다.
반신욕을 즐기는 앵순이는 물이 다리 정도까지 차면 날개와 꼬리를 물속에 넣고 엄청난 속도로 깃털을 털어낸다. 본인이 만족할 만큼 목욕을 해야 그제야 물에서 나온다. 목욕 후 드라이기로 털을 말려주는 건 집사의 몫이다. 여름에는 따뜻해서 괜찮지만, 겨울에는 젖은 털을 오래 놔두면 감기에 걸리기 때문에 집사의 손길이 필요하다. 감기에 걸리면 저 작은 콧구멍에서 사람처럼 콧물이 나온다.
사람도 머리스타일에 따라 인상이 달라지는데 앵무새도 털 상태에 따라 미모가 달라진다. 볼품없이 홀딱 젖은 앵무새지만 앵집사 눈에는 그래도 예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