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흥미진진한 독자 Dec 19. 2023

버르장머리 없는 앵무새라고?

시부모님께서 집에 방문하셨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앵순이 이야기가 나왔고 앵순이의 행동을 한 마디로 '버르장머리 없다'로 표현하셨다.


앵순이와 함께 사는 우리 가족들은 앵순이의 행동을 보고 때로는 '고집이 세다.'정도로 생각했지, 버르장머리가 없다고 까진 생각하지 않았다. 제삼자가 보면 버르장머리 없다고 보일 수도 있겠구나 싶다. 그러고 보니 인간들 관점에서 몇몇 버르장머리가 없다고 보일 수 있는 행동이 몇 가지 있다.



1. 식사는 사람 머리에서 먹어야 제맛.

앵무새도 분리불안이 있는 것인가. 밥을 먹다가도 사람이 보이지 않으면 먹던 음식을 물고 사람에게 날아온다. 새 입장에서 착지하기 가장 쉬운 위치가 머리다 보니 가족들의 정수리는 종종 앵순이의 식탁이 된다. 먹다 만 해바라기씨를 물고 와 정수리에 앉아 '뽀지락 뽀지락' 잘도 까먹는다. 문제는 껍질과 가루가 머리에 떨어진다는 것이다. 새들은 먹는 거보다 흘리는 게 더 많다. 해바라기 씨를 대충 먹다 떨어뜨렸는데 하필 옆에 화분이 있어서 해바라기 싹이 나온 적도 있다. 남기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하는 조류들이다. 혹 나무에 올라오지 못하는 땅에 사는 생명체들을 위해 일부러 아래로 떨어뜨려 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2. 듣기 싫은 소리를 내면 사정없이 문다.

앵순이의 화를 부르는 소리가 있다. 물티슈 꺼내는 소리와 비닐 랩을 씌우기 위해 비닐을 당기는 소리를 극도로 싫어한다. 인간들에게는 크게 거슬리는 소리가 아닌데 새들이 듣기에는 매우 신경을 돋우는 소리인가 보다. 어릴 적 칠판을 손톱으로 긁는 소리를 들으면 소름이 돋았는데 앵순이도 그 정도로 싫어하는 소리인가 보다. 앵순이가 옆에 있는데 아무 생각 없이 비닐랩을 꺼내다가 인정사정없이 물렸다. 위부리 아래 부리 아주 선명하게 자국을 남겨 주었다. 새도 눈이 돌아갈 때가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너무 아프게 물어서 배신감이 들었지만 어쩌겠는가 본능이 거부하는 소리라는데.


아니면 일회용품 사용이 지구를 오염시키고 환경을 파괴하고 있다는 것을 앵순이가 육감으로 알아차리고 집사들의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게 하고자 큰 뜻을 품고 경고 차원에서 한 행동일지도 모르겠다. 앵순이가 싫다는데 물티슈와 비닐랩 사용을 줄여봐야겠다.



3. 책상 위 물건은 무조건 바닥으로 던진다.


앵순이는 마우스, 리모컨, 무선이어폰 등 책상 위에 있는 물건을 아래로 떨어뜨리는 취미가 있다. 집에서 툭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면 앵순이가 물건을 집어던졌음을 알 수 있다. 75g에 지나지 않는 몸무게를 지니고 있어 물건을 집어서 던질 수는 없지만 물건을 모서리로 밀어서 톡 떨어뜨린다. 앵순이 레이더망에 가장 많이 걸린 물건은 크기가 제일 작은 무선 이어폰이다. 식탁 위에 무심코 올려두면 어느새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며 뚜껑이 열린 채 널브러져 있다. 앵순이는 물건을 던지며 스트레스를 푸는 취미가 있나 보다. 알다가도 모를 새새꾸 마음이다.



"너 이리좀 와 볼래? 귀여운데 한 번 만져보자."


"싫은데 그 손 치워"

사람이 오라고 손을 내밀 때, 앵순이가 오고 싶으면 발을 내밀고 오기 싫으면 뒤로 몸을 숨겨 버린다. 너에게 가기 싫다는 감정표현에 마음이 상할 법도 하지만 모니터 뒤로 숨는 귀여운 행동에 그저 웃음이 날 뿐이다. 요구사항을 거부당해도 미소 짓게 하는 앵순이의 귀여운 버르장머리 없음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계절 내내 하얀 눈이 내리는 집(앵무새가 머문 자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