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말하는 키 크는 법
잃는 게 있어야 얻는 것도 있다
중학교 3학년 1학기 여름방학에 아들의 키가 180cm를 찍었다. 쌍둥이로 태어나 다른 아이들보다 작은 몸으로 시작했는데 어느덧 엄마 키는 가볍게 넘더니 아빠 키와 비슷해졌다. 1~2년 사이에 갑자기 폭풍 성장했다.
키가 작은 같은 반 친구가 상담을 요청해서 이야기를 들어봤더니 좋아하는 여자친구가 있는데 본인보다 키가 커서 스트레스받는다고 한다. 그래서 쑥쑥 크고 있는 쌍둥이 친구들에게 키 크는 방법을 물어본 것이다.
아들의 키 크는 처방은 간단명료했다.
1. 하루에 우유 한 통 마시기
2. 취침 전 핸드폰 부모님께 반납
3. 저녁 10시 이전에 잘 것
아들 친구는 핸드폰 반납은 어려울 것 같다면서도 꽤 심각한 상황이었던지 노력은 해보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틀 뒤 그 친구는 도저히 못 하겠으니 다른 방법은 없냐고 물어봤다는 것이다. 10시에 잠드는 것도 힘들고 핸드폰 없으니 불안해서 더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아들은 그럼 "키 크는 거 포기해, 수면은 키 키는데 중요해."라고 냉정하게 말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한 참 클 나이에 핸드폰의 부재가 숙면의 주요한 원인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유튜브에 접속하면 알고리즘으로 추천해 주는 영상을 클릭하다 늦게 잠든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쌍둥이들은 핸드폰이 없어서 그런지 침대에 누우면 10분 이내로 잠드는 것이 습관으로 자리 잡았다. 아빠 잔소리 단골 멘트 중 하나가 "공부 안 하려면 잠이라도 푹 자서 키라도 커, 그래야 장가라도 간다."는 것이었다. 공부하기 싫었던 둥이들은 매일 일찍 잠자리에 들었고 정말 키가 컸다. 이제 키는 그만 커도 되니 밤새워 공부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세상은 공평하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 법이고, 하나를 잃었으면 다른 하나를 얻기도 한다.
공교롭게도 핸드폰을 사용하지 않고 나서부터 키가 쑥쑥 자라는 바람에
아빠는 핸드폰을 잃고
아들 키를 얻었다고 생각하고
엄마는 성적을 잃고
아들 키를 얻었다고 생각한다.
가성비 좋은 선택이었는지는 둥이들의 성적에 달려있다. 인제 그만 자고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