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툼

13년지기 친구와의 싸움

by 고양이맘마





11 E 31st Street, New York, NY (10016) / Hotel Arlo NoMad




작년 7월, 생전 처음으로 미국에 방문했다. LA에 있는 친한 언니를 방문하기 위해서였다. 그 김에 친구가 있는 뉴욕에도 방문하였다. 그는 나를 위해 비행기 티켓을 끊어주고 사진 속 특별한 호텔도 예약해 주었다. 지갑을 잃어버렸던 나를 위해 어딜 가든 돈을 대신 지불해 주었다. 많은 값을 썼으리라 예상되지만 마지막 공항에 가는 택시까지 예약해주어 너무나도 고맙고 미안했다. 13년지기, 중학생 때부터 친하던 친구. 오래 전부터 지구 반대편에 살고 있었지만 거의 매일같이 연락이 끊이지 않던 사람. 나의 모든 일을 미주알고주알 털어놓을 수 있는, 믿음직스러운 단짝. 이 포스팅에 있는 내 사진은 브런치의 프로필 사진이기도 하다. SNS에서 핫한 '알로 노마드'라는 뉴욕의 전경이 보이는 호텔에서 촬영한 필름 사진이다. 친구가 찍어주었다.

그런 좋은 친구와 작년 10월에 다툼을 했다. 뉴욕에서 직접 만난지 두 달 여만의 일이었다. 친구 사이의 다툼이야 사실 큰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13년을 친하면서 작은 말다툼 두 번이 전부였던 우리 사이로는, 이 싸움이 너무 큰 타격을 가져왔다.


시작은 SNS의 댓글이었다. 먼저 어떤 항암 치료중인 만화가가 이것저것 해 보아도 차도가 없다며 새로운 방법을 추천해달라는 글을 올렸다. 나는 그의 그림에 응원과 함께 채식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하는 댓글을 달았다. 비록 종종 고기의 유혹에 넘어가기는 하지만, 평소 페스코 베지테리언을 지향하는 사람이다. 채식에 대한 지식은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짧지 않은 시간동안 다큐멘터리나 발췌된 논문, 신문 기사 등 다양한 정보를 고루 접했다. 실제로 2018 평창 올림픽에서 일할 당시 페스코 베지테리언으로 지냈었고, 피부나 건강 상태 등 많은 긍정적 변화를 경험했다. 따라서 그 만화가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온갖 방법을 동원해도 항암에 효과가 없었다면 시도해 보길 권유한 것이었다. 당연히 채식이 옳다고만 적지는 않았다. 하지만 예상한대로 내 댓글에는 악플이 많이 달렸다. 무분별한 욕설이 대부분이었다. 한국인은 과거에 고기를 제대로 먹지 못하고 살아왔던 민족이기에 육식을 지양하는 말에 발끈한다는 낭설이 사실처럼 느껴졌다.

내가 잘못했나 싶어 여러 번 되짚어 보았다. 하지만 근거에 충분한 자신이 있었고, 역지사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내가 벼랑 끝에 몰린 암 환자라면. 나였다면 어땠을까. 나의 답은 '고마울 것 같다'였다. 내가 반대의 입장일 때, 누군가가 내가 몰랐던 정보를 알려준다면. 적어도 조사는 해 볼 것 같았다. 그대로 실천하지 않더라도 알려준 것만으로도 고마울 것 같았다. 일면식도 모르는 사람이 나를 이만큼이나 신경 써준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감동받을 것 같았다. 그래서 악플이 한참 달림에도 꿋꿋이 댓글은 지우지 않았다.


하지만 내 친구의 생각은 달랐던 것 같다. 미국 의대 대학원을 지망 중이던 친구의 눈에는 내가 많이 무식해 보였나 보다. 댓글이 달리고 며칠 뒤, 장문의 카톡이 왔다. 친구는 아주 화가 나 있었다. 채식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틀렸으며 내가 얼마나 큰 잘못을 했는지를 조목조목 짚어주었다. 나는 나름대로 믿을만한 곳에서 정보를 배워왔다고 생각했는데. 그는 내게 얼마나 무식하고 폭력적인지 모른다며 크게 타박했다. 나는 내가 가진 정보들로 그에게 반박했다. 그러나 아무래도 나는 영화학도였고, 그는 의사 지망생이다. 채식에 관한 지식으로는 내가 그를 꺾을 수가 없었다. 내가 알던 정보들을 다시금 되짚어 보았다. 일정 부분 과장된 보도나 짜깁기 된 논문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어느 정도 틀렸음을 시인했다. 그래, 사실 여기까지는 괜찮았다.

친구는 화를 내다 내다 못해 내게 싸이코패스냐고 물었다. 항암치료하는 사람이 얼마나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겠느냐고 말했다. 나는 만화가의 SNS에서 댓글을 삭제했다. 미안하다는 내용으로 보냈던 DM도 읽기 전에 삭제했다. 하지만 나였다면. 내가 그 만화가였다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무언가 필요했을 거라고 생각해서 한 행동이었다. 의도에 대해 전혀 이해하려 하지 않는 태도가 억울했다. 결국 우리는 몇 시간에 걸친 논쟁 끝에 더 이상 이 이야기를 꺼내지 않기로 했다. 그는 나에게 미안하다며 앞으로 우리가 의견이 다르더라도 토론을 나눌 수 있는 친구 사이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하지만 내 마음은 이미 돌이킬 수 없이 상처받은 뒤였다.

나는 더 이상 답장을 하지 않았다. 반대의 경우였다면 내가 절대 하지 않을 행동을 당하고 나니 손이 떨렸다. 내 친구가 잘못을 했고 내가 발견을 했다면? 옳고 그름을 떠나서, 오랫동안 알아온 사람이기에 왜 그랬는지를 먼저 물었을 것 같다. 내 친구가 절대 싸이코패스 적인 사고로 악의를 가지고 행동을 했으리라고는 생각지 않았을 텐데. 친구의 행동에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이유가 있을 거라고, 그 정도 생각은 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믿어주었을 텐데. 그리고 내가 언어적인 폭력으로 친구에게 상처를 주었다면? 내가 먼저 '의견이 다르더라도 이렇게 종종 토론하자'고 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내가 받은 상처의 깊이는 알려고도 하지 않은 채 어물쩡 무마해버리는 행위 자체가 더욱 큰 폭력으로 다가왔다.


그래. 친구 사이라면 싸울 수도 있다고, 그게 뭐 그리 예민한 문제냐고 혹자는 말할 것이다. 하지만 아주 오랫동안 믿어왔던 친구이기에 그의 말이 더욱 아팠다. 이게 벌써 작년 가을 일이다. 오랫동안 생각한 결과, 어쩌면... 나는 명문대를 졸업하고 좋은 직장을 가진 데다가 괜찮은 공부를 하는 친구에게 열등감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친구가 올해 초에 한국을 방문할 거라는 사실을 알고 이 때를 계획했다. 내가 뉴욕에 묵을 때 써 준 돈을 모두 갚는다는 마음으로, 좋은 곳에 많이 데려가 주고 싶었다. 물론 고마워서나 미안해서 그러고자 하는 마음이 가장 크긴 했다. 하지만 갚지 않으면 친구가 나를 염치없다고 욕할 것만 같았다.

대학원을 준비하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영국의 명문 대학에 석사 진학을 준비하자니 너무나도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떨어지면 어떡하지. 친구는 그저 나를 한심하게 한국에 눌러앉은 애로 생각하겠지. 자신의 스마트하고 트렌디한 삶의 방식과 동떨어진 패배자로 판단하겠지.

예쁘고 날씬한 그와 달리 갑작스레 살이 많이 쪄 버린 나를 창피하게 여기겠지. 같이 다니고 싶어하지도 않겠지. 게으르고 나태해보인다고 생각하겠지. 살을 빼고자 하는 의지조차 없는 나를 불쌍히 여기겠지.

이 모든 걸 친구가 실제로 생각했으리라고는 믿지 않는다. 그럼에도 의식 깊은 곳에서는 이러한 자격지심들이 나를 찌른다. 무식한 실패자이기에 채식이 뭔지도 모른 채 공적인 곳에서 지껄이고 있었겠지 하며 나를 판단하는 친구의 모습을 그리면서.


석사를 합격해야지만 친구에게 연락할 자신이 생기겠다고 여겨왔다. 하지만 며칠 전, 생각지도 못하게 런던의 상당히 좋은 학교에 덜컥 합격해 버렸다. 5-6월 쯤이나 되어야 연락하겠지 싶어 친구에 대한 생각을 차일피일 미루고만 있었는데.

당시 친구의 말이 너무도 매섭게 느껴졌더랬다. 그 여파 때문인지 나는 아직도 친구와의 카톡창을 차마 읽지 못하겠다. 그가 한국에 왔을 때도 만나지 못했다. 하지만 자꾸만 생각이 난다. 좋은 일, 나쁜 일, 삶에서 사건이 생기면 가장 먼저 알리던 친구였기에. 그 사이에 결혼한 일, 졸업영화를 잘 마무리한 일, 학부를 졸업한 일, 예술인 주택 심사를 통과하고 선발된 일, 남편이 좋은 직장에 취직한 일, 내가 창업한 일, 그리고 런던의 대학에 석사 과정을 합격한 일. 모든 걸 이야기 나누고 싶다.

내가 다시 연락하면 너는 돌아올까. 우리는 예전처럼 다시 하하호호 웃으며 경계없이 이야기 할 수 있을까. 마음이 아프고 두렵다. 함께 공유했던 웃음과 눈물이 무색하게 연락하기가 무섭다. 널 잃을 것만 같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R.I.P. 공정한 경쟁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