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한 경쟁은 죽었다. 공명정대가 기본 원칙인 자본주의는 편법에 찌들어 누렇게 바랬다.
얼마 전 모 유명 신문사의 계열사에 입사 지원을 했다. 동물 콘텐츠를 만드는 회사였다. 신입을 뽑는다고 했고, 이전까지 짧은 경력들 위주로 일 해 온 나는 자신있게 지원을 했다. 글을 쓰고 영상을 만든다. 아주 오랜 시간 동안 해 온 일이다. 최고라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절대 못할 리 없다고는 자부한다. 더군다나 이제 막 학부를 졸업했으니 경험과 나이가 적절할 때였다. 종석이와 완석이를 키우며 반려동물에 대한 지식도 쌓았다. 정말 즐거울 것 같아 탐이 나는 일자리였다.
취업을 꼭 해야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다. 모종의 경제적 사정 때문에 나는 풀타임 일자리를 구하지 않는 편이 유리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이 너무 즐거워보였다. 급여도 낮고 대단한 직책도 아니지만, 그저 내가 진심으로 즐겁게 일할 수 있어보여 지원했다.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이 너무나도 필요했다. 진심을 다해 몰두할 수 있는 일.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서울시청의 콘텐츠 개발 일자리에도 지원했다. 신입과 경력을 무관하고 뽑는 일이었기 때문에 결과를 기대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크게 몰두할 수 있는 일거리가 아니라고 여겨졌다. 다만 예상 외로 면접에서 예비 1번으로 탈락했다.
서류를 통과했다! 너무나도 신이 났다. 진심을 담은 내 이야기가 인정받은 기분이었다. 면접 날 아침부터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드라이하고, 엄마한테 빌린 예쁜 원피스 정장을 꺼내 입었다. 화장은 알러지 때문에 할 수가 없으니 최선을 다해 깔끔하게 꾸몄다. 새로 산 힐을 신고 밖으로 나섰다. 남편은 내 면접을 위해 차까지 빌려왔다. 우리는 서울의 중심부로 향했다.
1차 면접실에는 나보다 어린 분들과 함께 입장했다. 나는 가장 마지막에 자기소개를 했는데, 다들 나보다 너무 밝고 생생한 에너지를 보이자 마음이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다행히 동물권 보호 이야기나 콘텐츠의 방향, 이제까지의 경력 등 진지한 질문들을 받았다. 나는 준비한 선에서 최선을 다해 답변했다.
정말 운이 좋게도 결과는 통과였다. 주말동안 온라인 인성검사를 진행했고, 그 과정 또한 최선을 다했다. 주중 이른 아침에 2차 최종 면접이 잡혔다는 통보를 받았다. 기대가 되었다. 어떤 질문을 할까. 아는 한도 내에서 무엇을 질문할지 백 가지 이상의 예상 답변들을 준비했다.
최종 면접에는 나를 포함한 세 사람이 들어가게 되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었지만 당황스럽게도 나머지 사람들은 86, 90년생이었다. 심지어 그들은 모두 경력직이었다. 그런데도 신입으로 지원했다라. 처음 들어가자마자 부터 불공정함에 대한 찝찝함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86년생 면접자는 외국에서 유학하고 온 분이셨다. 한국에서 축산 관련 학과를 졸업하고 호주에서 석사 과정을 밟았다고 했다. 공부를 하던 중 동물복지에 관심이 생겼다고 한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 동물보호단체에서 동물권을 위한 입법운동을 하다가 면접을 보러 오셨다. 이 회사의 어떤 프로젝트에 프리랜서로 콜라보한 경험이 있었다. 석사 논문에 관한 내용, 외국에서 공부한 경험, 한국에서 동물 보호를 위해 진행했던 일들. 그는 다양한 동물에 관한 질문을 받았다.
90년생 면접자는 3년 이상을 이 회사의 모회사인 신문사의 또다른 계열사에서 근무한 분이셨다. 아침 일곱 시부터 밤 열두 시까지 기사를 쓰곤 했다더라. 주로 썼던 기사 내용들 중, 동물에 대한 기사들이 반응이 좋았다고 했다. 그는 업무 경험에 관한 질문과 펫 로스에 대한 이야기, 동물권에 대해 생각하는 바 등의 질문을 받았다.
반면 나는 별다른 질문을 받지 못했다. 한 시간이 조금 안 된 면접 시간 중 내게는 그저 몇 마디 답변의 기회만 주어졌다. 나는 글쓰는 일을 정말 좋아하고 자신이 있다. 하지만 내가 무슨 글을 썼는지, 어떤 글을 쓸 수 있는지, 그들은 궁금해하지조차 않았다. 내게 돌아온 질문은 정말이지 탈락을 미리 경고하는 듯했다. 내게 던져진 질문들 중 그나마 가장 가치 있었던 건, 1차 면접 때와 똑같은 '어떤 콘텐츠를 만들고 싶냐' 뿐이었다. 나는 취미가 무엇인지, 그리고 왜 반려동물의 이름을 사람 이름으로 지었는지 등의 질문을 받았다. 이 한심한 질문에 성심성의껏 답변하기 위해 내 개인사를 들추던 그 시간이 너무 수치스러웠다.
나도 동물권과 복지에 대한 의견을 가지고 있다.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고, 온갖 종류의 글을 다 써 보았다. 수상 실적도 개인 작품도 적지 않다. 온갖 것들을 다 기획하고 진행하여 성공시켜 보았다. 하지만 그들은 내게 아무것도 궁금해하지 않았다. 묻지조차 않았다. 그럴 거면 나를 왜 면접에 불렀을까 원망이 되었다.
애초에 경력직들이 신입으로 밀고 지원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들은 다른 경력직들과 붙어서는 경쟁력이 없기 때문이다. 연봉을 낮추고 경력을 깎아서라도 신입들의 밥그릇을 뺏어야 한다. 그게 그들의 놀랍도록 이기적인 논리이다. 나는 이제껏 절실히 원한 곳에 지원해서 탈락해 본 적이 거의 없다. 이 회사의 업무는 이보다 더 내게 맞을 수가 없다고 여겨진 일이었다. 너무나도 자신있었고 내 능력을 활용할 길이 분명해 보였다. 하지만 나는 정정당당하지 못한 자들 때문에 기회를 잃었다. 친구들과 분노의 대화를 나누며 알게 된 사실인데, 우리나라 취업시장이 다 이 모양 이 꼴이란다. 한숨이 푹 나왔다. 싸울 기운조차 잃었다. 나 혼자만이 겪은 일이 아니라니.
더 큰 문제는 기업들이다. 내가 지원한 회사만 해도 이름을 들으면 누구나 알 법한 큰 신문사이다. 그런 회사에서 너무나도 당연하게 신입을 뽑으면서 경력직들과 경쟁시킨다. 이 모든 게 자신들이 원하는 사람을 뽑기 위해서 정해진 결과였는지도 모른다. 매우 불공정하고 비겁한 막무가내 경쟁이라 말할 수 있겠다. 큰 기업들이 다 그런 식이니, 작은 기업들도 그래도 되는 줄 알겠지. 그렇게 편법을 쓰더라도 뽑힐 수 있으니 취업준비생들도 모두 계속해서 편법을 쓸 것이다. 냉정한 능력본위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공정한 제 수준의 경쟁 끝에 실력이 안 되면 굶는 게 맞다. 하지만 기업은 자신들에게 돈만 되면 먹던 자가 계속 먹던, 굶던 자가 계속 굶던 관심이 없다. 결국 먹이사슬의 맨 아래에 있는 자들은 아무리 발버둥치고 노력해도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계속 나가떨어진다. 이게 나였다.
정말 좋아하던 회사였는데. 물론 그 회사의 동물에 대한 인식에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긴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우 좋아서 매번 구독하여 읽고 내가 콘텐츠를 기획 하기를 꿈꾸던 곳이었다. 며칠의 분노와 상심 끝에 결론을 내렸다. 나는 준비되어 있었지만 그들은 알아차리지 못했다. 당신들은 나를 놓쳤다. 지금 할 수 있는 건 겨우 브런치에 글을 끄적이는 것 뿐이지만. 언젠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생긴다면 이 모든 불공정한 경쟁을 바꾸고야 말 것이다.
그 전까지, 대한민국의 공정 경쟁은 모두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