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겪은 성폭력 1

초등학교 3학년

by 고양이맘마




2081324_874016_3544.jpg 이미지 출처 : Google




나는 어릴 적 꽤 오랫동안 수영을 배웠다. 아이러니 한 건 아직도 헤엄을 칠 줄 모른다는 점이다. 다른 종목의 스포츠들은 대체로 잘 따라갔는데, 어째서인지 수영은 아무리 연습해도 늘지가 않았다.

그리고 나의 첫 성폭력 피해는 아카데미에서의 수영 시간이었다. 당시에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몰라 두려웠으나 용기를 내어 엄마에게 말을 전달했다. 이 다음 시간에 선생님과 껄끄러워지는 게 걱정이었다. 어떤 마음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선생님이 싫지는 않았다. 다만 그 피해 사실만이 거북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였던 듯하다. 어쩌면 4학년 때였을 수도 있다. 정확한 시기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느 여름, 나는 주 2-3회 이상 수영을 배우러 다녔다. 원래부터 다니던 스포츠 아카데미의 여름 특강이었다. 처음 수영장에 들어가면 발차기 연습을 먼저 했다. 발차기 연습이 끝나면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자유영, 배영, 평영 등 각자 할 수 있는 자세를 취하게 했다. 아이들의 자세를 고쳐준 다음 선생님은 출발 휘슬을 울렸다. 그러면 각자 출발하고 돌아오는 형식이었다.

나는 이상하게 자유영을 벗어나지 못했다. 선생님은 그런 내 발바닥을 밀어주곤 하셨다. 하지만 어느 날엔가부터 내 엉덩이와 허리, 골반 쪽을 잡고 밀어주기 시작하셨다. 그러더니 날이 점차 지나자 나의 골반, 허리, 엉덩이 사이를 붙잡고 수영장을 한 바퀴씩 돌아 내가 헤엄치도록 하셨다.


다른 친구들도 그렇게 연습했는지는 사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나는 그게 너무 간지럽고 불편했다. 수영에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유치원과 초등학교 저학년 때 배웠던 '여기는 만지지 마세요'라고 용기있게 말하라는 교육이 기억났다. 동시에 선생님과 껄끄러워지는 게 두려웠다. 최대한 밝은 얼굴로 선생님께 두세 번 이야기했다. 물론 나는 절대 온순하고 얌전한 학생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까웠다. 그래서인지 선생님은 내 이야기를 수업에 참여하고 싶지 않아서 핑계대는 장난 쯤으로 치부하셨던 것 같다. 결국 나는 수영이 싫어졌다.

어렸던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결국 엄마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 뿐이었다. 엄마는 나의 호소를 듣고 구체적인 정황을 물었다. 나는 엄마에게 최대한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하지만 그 뒤에도 여전히 덧붙이는 말이 있었다. 엄마, 선생님이 일부러 그런 건 아닐 거야. 착한 아이 콤플렉스가 여기서도 나를 옥죄었다. 엄마는 다행히 지혜로운 분이셨고, 선생님께 전화를 걸어 말씀드렸다. 엄마가 통화할 때 나 또한 옆에서 듣고 있었다. 나는 엄마가 선생님과 싸우지는 않을까 걱정했지만 오히려 대화는 부드럽게 잘 마무리되었다. 조마조마했던 마음은 드디어 안심을 하게 되었다. 엄마가 너무나도 고마웠다.


이후 어떻게 되었는지가 궁금할 것이다. 나는 결국 선생님에게서 제외대상이 되었다. 다른 친구들이 자유영부터 차근차근 수영 스킬을 올리는 동안, 레인 옆 유아풀에서 키판을 들고 둥둥 떠다니고만 있었다. 선생님은 내게 재미없으면 놀아도 된다는 좋은 말로 구슬렸다. 수영이 싫어졌던 당시의 나로서는 불만이 없었다. 다시 수영을 배우면 또 내가 만짐 당할 것이라 여겨졌다. 엄마에게 또다시 말하고자 하는 의지조차 없을 만큼 이 불편함에 피로를 느꼈다.

나는 초등학교 6년동안 여름마다 수영을 배웠다. 그리고 아직까지 아무런 헤엄도 치지 못한다. 공정하고 올바른 방법의 교육이었는가를 생각한다면, 글쎄, 전혀 아니라 생각한다. 어릴 때야 좋았을지 몰라도 지금은 억울한 마음이 든다.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다소 올드한 방식의 교육 때문에 나는 그게 폭력인 줄도 모르고 컸다. 물론 선생님이 정말로 일부러 그런 게 아닐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렇다면 선생님은 학생이 불편하지 않을 새로운 방식을 찾았어야만 했다. 싫은 소리 한 번에 나를 포기하고 방치한 건 정당한 처사가 아니었다.


누군가는 이 글을 읽고 '이게 무슨 폭력이야' 라고 시시해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신, 이 글을 애초에 읽은 목적이 무엇이었는가? 누군가의 커다란 성폭력 이야기를 듣고 친구들에게 공유하며 소비하고자 제목을 클릭했던 것은 아닌가?

가해자의 의도가 '가해'가 아니었더라도 피해자가 생겼다면 '피해'는 성립한다. 우리 사회가 이제껏 가해자의 억울함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소한 피해자들을 외면해 왔는지 생각해 보길 바란다. 나는 앞으로 내가 평생동안 겪어온 다양한 크고 작은 성폭력들에 대해 짧게나마 시리즈로 글을 작성할 예정이다. 이 이야기들이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가 될지언정, 누군가에게 살짝 흘러 들어가 일말의 용기라도 난다면 그걸로 족하다. 그러니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부디 '그 때 넘어갔으면 된 거지 왜 이제와서?' 라고 생각하지는 않길 바란다. 시간이 지났다고 해서 피해 사실이 추억으로 미화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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