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6학년
내 가슴은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으로 몽우리가 생기기 시작했다. 중학생이 되기 전까지는 가슴의 형태가 잡히지 않았기에 종종 아팠다. 모양이 잡힐 때까지 스포츠 브래지어를 착용하기로 했다. 스포츠 브라는 가슴이 흔들리거나 옷에 쓸리는 것을 막아주어 매우 마음에 들었다.
지금이야 노브라와 예스브라 중 선택하라 한다면 당연히 전자겠지만, 당시에 어렸던 나는 2차성징이 조금 부끄러웠다. 전혀 부끄러울 게 아니라는 걸 머리로는 알면서도 말이다. 그래서 나는 가슴이 작아보이는 스포츠 브라가 더욱 좋았다. 비록 입고 벗을 때 일반 브라보다 조금 더 불편하더라도 말이다.
초등학교 6학년 어느 토요일이었다. 그 때는 토요일에도 학교를 다니던 시절이었다. 내 기억에 토요일은 4교시 뿐이었다. 점심 즈음 수업이 끝나고 나는 친구들과 컵 떡볶이를 먹었다. 청소년 수련관이 동네에 생긴지 얼마 되지 않을 때였다. 반 아이들과 거기에서 모이기로 했었다.
5층이 우리들의 아지트였다. 거기엔 게임용 컴퓨터도, 두 벽을 가득 채운 만화책들도, 좋아하는 영화 DVD들도 한가득이었다. 친구들은 거기에서 모여서 다같이 게임을 하기로 했었다.
무슨 일 때문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나는 그 날 학교가 끝난 뒤 이상하게 매우 바빴다. 결국 친구들을 먼저 수련관에 가 있으라고 보내었다. 대부분 아이들은 학교가 끝나자마자 서둘러 청소년 수련관 5층에 가 있기 바빴다. 먼저 게임할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였다. 내가 뒤늦게 청소년 수련관 건물에 들어갔을 때는, 이미 복도가 텅 비어 있었다.
텅 빈 복도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일은 어딘가 모르게 으스스했다. 평소에 귀신 따위를 두려워하지 않는 나는 오히려 모르는 사람이 어디에선가 툭 튀어나올까가 더 걱정 되었다. 결국 계단으로 5층까지 올라가기를 선택했다.
계단이 있는 비상구는 어둑어둑했다. 하지만 나는 뛰어 올라가는 건 자신이 있었다. 어둠이 무섭지는 않았다. 서둘러서 친구들이 기다리는 5층으로 향했다. 하나 둘 뛰어 올라가다가 윗층에서 남자 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급하게 올라가는 데에만 온 정신을 몰두해 아랑곳하지 않았다. 목소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3층 반 정도 갔을 때였다. 내려오는 두 명의 남고생을 마주쳤다. 그들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서로 시선을 주고받았다. 그리고는 눈 깜짝할 새에, 내 스포츠 브라 뒷끈을 잡아당겼다가 팡! 놓았다. 너무 아파 눈물이 핑 돌았다. 낄낄거리며 후다닥 도망가는 그 둘의 뒷모습을 기억하려 했지만 정신이 없었다. 당황스럽고 등이 아파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 못했다.
그들에겐 이 모든 게 장난이었구나. 그래, 장난이라면 별 수 없지 뭐. 난 이 모든 과정을 장난이라고 받아들이고 쉽게 넘겨야지만 사회에서 '쿨하다'고 인정받는 줄 알았다. 그리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성적 호기심이 충분한 남고생들이라면 이 정도 장난, 칠 수도 있지 뭐. 내가 뭐 대단히 막대한 손해를 입은 건 아니니까 굳이 그 둘을 걸고 넘어지지 않아도 되지, 뭐. 계속해서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아무 일도 아니었던 것처럼 넘어갔다. 다들 그런 것 같아 보이기 때문이었다.
이 사건이 문제가 됨을 깨달은 건 불과 몇 년 되지 않았다. 어릴 때 내가 조금만 더 알았더라면. 조금만 더 용기를 낼 수 있었더라면. 내 스스로 피해자의 편에 설 수 있었더라면. 어린 나는 성추행 사실을 장난이라고 가볍게 치부하는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목소리를 낼 수 있었을 텐데.
어린 나에게 미안하다. 그 때, 나는 기분이 나빠도 되었다. 울어도 되었고 화내도 되었다. 부모님이나 선생님께 일러도 되었다. 친구들에게 소문을 내고 욕을 해도 되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내 스스로를 사회가 원하는 틀 안에 가두었다. 그리고 그것이 잘못되지 않았으리라고 끝없이 세뇌했다. 미안해, 미안하다 내가. 더 이상 어린 여자아이들에게 이런 피해가 없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