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동은 원래 소위 말하는 '잘 사는 동네'였다고 한다. 내가 출발한 곳 근처에서는 상상이 되지 않는 말이다. 좁고 지저분한 골목길과 낡은 상점들이 즐비한 시장. 도시 외곽, 산 밑자락 시골마을이 잘 사는 동네일 수 있나 싶어 주택가로 걸어가 보았다. 절대 어느 것에도 휘둘리지 말고, 발걸음이 멈출 때까지 걸을 계획으로 나섰다.
내 상상과 다르게 그 주택가는 마치 성북동의 높이와 비슷한 담벼락을 지니고 있었다. 우습게 보았던 내 자신이 도리어 우스울 만큼 거리는 차가웠다. 그래 너네 잘 살았구나. 지금도 저 높은 건물과 넓은 정원은 모두 너희만의 것이구나. 허탈하게 웃으며 정신없이 걷다가 골목의 끝에 다다랐다.
주택가가 끝난 지점은 어느 버스와 택시 종점이었다. 종점은 언제나 묘한 기운이 돈다. 나는 모르는 장소. 그 업계 사람들만이 공유하는 곳. 설렜다.
고등학생의 나는 버스 기사가 되고 싶어 부모와 갈등을 빚는 학생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하지만 입시학원에서 그처럼 시시한 이야기를 좋아할 리 없었다. 겁많은 고삼 학생은 우연히 닿은 어느 버스 종점에서도 주변을 조사하긴커녕 짜증섞인 아저씨들이 무서워 눈치만 보았다.
버스 기사들은 바빴다. 내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무시 당하는 게 이렇게 신나기도 처음이었다. 어린 시절 쓰지 못한 글이 떠올라 묘사하기 힘든 감정에 휩싸였다. 어느 주택가의 이야기는 머릿속에서 금세 잊혀졌다. 종점 부지엔 문조차 없었다. 담배 냄새가 그득한 곳에서,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 한참을 머물렀다. 언제나 큰 차의 운전은 내게 동경의 행위였음을 깨달았다. 도로에서 마주친 버스 기사들이 서로 손을 흔드는 모습은 너무나 멋있다. 나는 늘 그 행위를 포착하기 위해 버스에서 맨 앞 자리에 앉았다.
나는 그 안에서 인사이더가 될 수 없다. 알고 있다. 버스가 아닌 종점이야말로 기사들의 삶이다. 짧게나마 숨을 돌릴 수 있는 아스팔트 땅. 처음으로 그곳을 관찰할 수 있었음에 만족하며 발걸음을 돌렸다.
<눈 여겨 볼 것>
1. 바닥 부분이 닳았음에도 의외로 때는 별로 타지 않은 기사의 면장갑
2. 기사의 손끝에서 자유로이 연기를 내뿜는 담배
3. 불규칙한 시간 간격으로 차곡차곡 채워지는 주차장 빈 칸들
4. 나갈 준비를 끝마치고 줄지어 서 있는 버스들의 반쯤 열린 문
5. 버스가 정차하자마자 급히 뛰어내리는 어떤 기사의 다급한 칫솔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