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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주 Aug 14. 2021

우리가 참 아끼던 사람

박완서 선생님


<우리가 참 아끼던 사람>을 어젯밤 읽다 잠들었고 아침에 눈뜨자마자 연이어 읽었다. 읽는 동안 자연스럽게 인덱스를 붙였다. 파랑은 찾아볼 책, 빨강은 페미니즘 혹은 신여성이라는 워딩, 노랑은 인용하고 싶은 구절. 작가, 기자, 교수, 학자, 평론가. 다양한 직업을 가진 10명이 인터뷰이가 되어 박완서를 인터뷰한 내용을 글로 묶은 책이다. 쓴 사람 이름을 모르고 읽어 내려가다 자꾸만 멈추어 서는 문장을 만나 ‘누가 쓴 거지?’ 되돌아가 이름을 확인하니 오호. 신형철이다. 역시! 남다르다는 생각도 하면서 한 권의 책을 후루룩 읽었다. 잘 쓴 글을 만난 즐거움. 읽는 기쁨이 배가 되는 문장을 만나면 도리 없다. 멈춰 서서 줄 긋고 되짚어 곱씹는다. “박완서 문학은 장악의 문학이다. 그 손바닥 위에 올라가면 모든 게 다 문학이 된다. 그 손이 인간의 욕망을 쥐락펴락 그려낸다. ‘뭘 자본주의씩이나, 적나라하게 그냥 돈으로 했으면 좋았을 것을.’(작가의 말, 아주 오래된 농담) 그러게, 뭘 욕망씩이나 적나라하게 그냥 욕심이라고 하자. 선생의 소설에서 인간은 대개 어떤 숭고한 가치가 아니라 작지만 집요한 욕심에 의해 움직인다.”




어쩜 이렇게 적확한 워딩으로 정의를 딱 내려버릴 수 있는지. 장악의 문학이란 표현을 보는 순간, 그래 이거지. 일상 소재를 작품으로 만들어내는 그 능력을 신형철은 장악의 힘이라고 정의했다. 에피소드를 나열한다고 작품이 되지는 않는다. 통찰하는 힘이 있고, 관통하는 능력이 있다. 억지 부리지 않고 진솔한 표현이 가지는 진정성이 있으며 박완서만의 문체가 있다. “‘그가 어머니와 누나를 무차별적으로 착취하도록 부추긴 건 내가 아니었다고는 못하겠다.’ 이것은 선생 특유의 수사학이다. 누구건 ‘~가 아니라고는 말 못하겠다’라고 실토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것, 그것이 장악의 문학이다. 그 문학을 교재 삼아 우리는 40년간 마음공부를 해왔다.” 박완서의 글도, 평론한 신형철의 글도 쓰는 족족 작품이 되는 건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처음부터 ‘나는 글을 쓴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지 말고 그냥 생계를 위해 하루하루를 사는 보통 사람의 생활을 체험하는 일이 필요할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체험과 상상력이 행복하게 결합되어 있지 않고 상상력만 과잉되어 있는 작품들은 읽고 나면 좀 허망해요.” 박완서의 말이다. 박노갑 선생님께서 포도주가 만들어지려면 뭐가 필요하냐 물었을 때 학생들이 포도, 소주, 설탕 뭐 이런 대답을 내놓았는데 선생님의 대답은 ‘시간’이었다고 한다. 그 말을 들은 박완서는 “밖으로 분출되지 않으면 안 될 때, 그때 써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보통 사람인 내가 하루하루를 살아내다 그중 의미 있는 하나를 건져내어 글로 기록하는 행위의 명분으로 더할 나위 없이 맞춤하다. 나는 글을 쓰는 게 아니라 체험한 생활을 기록하는 것이니까.   



 

간밤에 페미니즘 고전에 해당하는 책을 검색했다. 라인업이라도 세워두는 것이 내겐 시작의 표지가 되겠다는 생각에서다. 페미니즘의 사전적 의미를 되짚어 보고 회자되는 책을 목록화했다. 우선 지식백과에서 페미니즘 정의 내리며 언급한 책을 우선순위에 놓았다. 어제 내려오는 차 안에서 들었던 서민의 페미니즘 강연 중 언급된 정희진의 페미니즘의 도전도 포함시켰다. 책장 먼지를 닦아내다 제목이 썩 마음에 들어 꺼내 든 책이 <우리가 참 아끼던 사람>. 표지를 보다 책장을 넘기다 자연스럽게 공부로 이어졌다. 인덱스 꼼꼼히 붙여가며 읽을 만큼 유용한 독서가 되었다. 끌리는 대로 했을 때 의외의 좋은 결과가 나기도 했던 내 경험을 비추어보면 이런 시작은 퍽 나답고 동기부여로 충분하다. 주관적인 끌림이 객관적인 매력을 만나는 그 지점에 내가 서 있다는 인식은 지속 가능한 힘이 된다. 내가 찍는 점들이 자연스럽게 선으로 이어져 마음은, 즐겁다.



     

완독한 아침, 책상을 정리했다. 집중할 수 있는 환경부터 만든 후 시작하고픈 마음이 시킨 행동이다. 어수선하게 널브러진 주변부터 정리하고픈 마음은 현실 역할을 놓치지 않고 정신 영역을 챙기고자 하는 의식의 발로다. 손 뻗으면 닿을 거리에 놓인 책을 다시 정열 했다. 나란히 꽂고 보니 죄다 분홍색이다. 연분홍, 진분홍, 선분홍. 어째서 페미니즘 책은 분홍 계열이 주를 이룰까. 제목이 주는 거부감을 색상으로 완화시키자는 속셈인가. 너무 분홍 일색이라 오히려 거부감 생길 만큼 분홍분홍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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