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어떤 날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향여행자 Mar 23. 2017

더디게 흐른 밤

완행 막차는 더 이상 타지 않기로 했다. 

막차를 탄 건 오랜만이었다. 막차를 탈 일이 도무지 없었다. '막차를 언제 탔었었나?'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어제 속초에서 만나고 싶은 작가님의 북토크가 있어 해질 무렵 부랴부랴 속초로 향했었다. 다음날 일이 없었다면 하룻밤 묵었을 테지만 일이 있기에 북토크가 끝나는 대로 막차를 타고 돌아와야 했다. 


인터넷으로 막차 시간을 확인하긴 했지만 매표소에서 다시 한번 확인을 했다. 8시 50분이라고 한다. 이상하다. 내가 알고 있는 막차 시간은 10시인데. 


"10시 차 없나요?"

"그건 완행이에요."


완행이어도 막차가 10시까지 있다는 게 중요했다. 북토크가 열리는 책방은 시외버스터미널 바로 뒤편에 있다. 나 같은 뚜벅이 여행객에게 터미널과 목적지가 가까운 건 아주 고마운 일이다.  7시 30분에 시작하는 북토크. 터미널까지 가고 티켓 발권하는 시간을 10분 정도 빼고도 2시간 20분은 확보다. 


북토크 자리는 일제히 앞을 보는 식이 아닌 마주 보며 앉을 수 있는 테이블로 세팅이 돼 있었다.  소규모로 진행된다고 했다. 내가 좋아하는 맥주도 준비돼 있었다. 소규모로 진행되는 북토크여서 자기소개를 피할 수 없었다. 어색함이 조금은 풀렸다. 작가님은 차분한 어조로 궁금한 이야기들을 하나씩 차근차근 풀어내셨다. 그러면서 사이사이 작가님의 이야기에 공감하기도 하고, 더 궁금한 것은 바로바로 물어보기도 했다. 맥주 한 병을 잔에 조금조금 채워가며 마시다 보니 어느새 한 병을 다 마셨고, 북토크도 어느새 끝이 났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듣다 보니 어느새 9시 20분이 넘었다. 30분이나 남았다. 혹여 막차를 놓치면 어쩌나 후다닥 문을 나서지 않아도 되는 것에 감사했다. 


9시 50분. 막차를 타러 터미널로 향했다. 버스는 10시가 되자 출발했다. 얼마나 많은 곳을 경유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불이 꺼졌다 몇 분 안 되어 켜지고 그러기를 몇 번. 어차피 내가 내려야 할 곳은 종착지니까 마음 놓고 자도 되는 것이었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낮이었다면 풍경 감상이라도 하며 지루함을 달랬을 텐데. 차들의 불빛만 드문드문 환할 뿐. 집에 빨리 도착했으면 좋겠다는 마음만 간절해졌다. 완행 버스는 막차와 어울리지 않았다. 



불과 몇 시간 전. 완행이어도 10시 차가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완행을 타고 있는 순간엔 빨리빨리를 재촉하고 있었다. 겨우 맥주 한 병에 속이 울렁일 리가 없는데. 꼬불꼬불 산길도 아닌데. 어쩐지 속까지 메스꺼웠다. 역시나 완행 버스는 막차와 어울리지 않는 거라고 다시금 생각했다. 


무정차였으면 이미 도착하고도 남았을 시간. 설마 또 경유하는 곳이 있을까 싶었지만 그 이후로도 3곳을 더 경유하고서야 도착했다. 버스 출발 전. 엄마께 전화가 걸려왔고 몇시에 도착하느냐고 내게 물었다. 늦은 시간에 도착하니 알아서 가겠다고 했지만 엄마는 늦은 시간이라서 마중을 오겠다고 하셨다. 엄마의 마음을 이기지 못했다. 도착 시간을 잘못 계산해서 엄마의 기다림은 그만큼 더 길어지고 말았다. 


더디게 흐르는 밤이었다. 더디게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마신 찬 공기는 속을 달래주는 까스활명수 같았다. 어두운 밤이었지만 저 멀리 걸어오는 엄마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막차를 타고 온 딸 때문에 하루의 고단함이 길어졌다. 완행이어서 그 고단함은 조금 더 길어지고 말았다. 다짐했다. 얼른 장롱면허를 탈출하자. 당장 힘들다면 막차는 타지 않기로. 완행 막차는 더더욱 타지 말자고. 



 








  




  

       


   



 

 

매거진의 이전글 여행을 하며 내가 달라졌다는 걸 느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