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들과 함께한 오후
그리움 한 잔, 행복 한 그릇
외할머니는 흥이 많으신 분이었다. 노래도 잘 부르시고 춤도 잘 추시고 술도 잘 드셨다. 17년 전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오늘 유독 그리워진 건 4시가 조금 넘어 주전부리를 챙겨 마을회관으로 할머니들을 뵈러 갔을 때다. 갈 때마다 늘 따뜻하게 맞아주시곤 한다. 달달한 주전부리엔 술이 빠질 수 없다면 소주와 잔을 챙겨 오시는 막내 할머니. 그런데 내 잔만 쏙 빼놓으셨다. 젊은 아가씨가 술을 마실까 싶었던 거다. '제 잔은요?.. 저도 마실 수 있는데.'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혹여 버릇없는 행동은 아닐까 싶어 아직은 조심스러웠다. 그런데 맞은편에 앉으신 할머니가 내 아쉬운 눈빛을 읽으셨는지 '아가씨도 저번에 보니 술도 좀 하는 거 같은데' 하며 잔을 하나 더 가지고 오더니 한 잔 따라주시는 거다. 어찌나 감사하던지. 넙죽 한 잔을 들이켜니 잘 마신다며 또 한 잔 따라주셨다. 그렇게 할머니들과 함께 처음 술을 마시는 날이 되었다.
흥이 오른 할머니 한 분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셨고, 이어서 계속해서 노래가 이어졌다. 평소 말이 없던 할머니셨는데 오늘에서야 할머니의 숨겨진 노래 실력을 알게 되었다. 할머니는 나를 보니 손녀가 떠오른다며 손녀 같아서 더 좋다며 노래가 절로 나온다고 하셨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 역시 외할머니가 떠올랐다. 지금까지 살아계셨다면 외할머니와 나는 둘도 없는 술친구가 되었을 것이다. 외할머니 생각에 내 앞에 계신 할머니들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졌다. 저녁으로 차려주신 만둣국까지 한 그릇 뚝딱했다. 아빠의 만둣국까지 챙겨주시는 세심한 마음에 감사하고 또 감사한 저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