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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향여행자 Feb 27. 2020

사소하지만 사소하지 않은 것

그림 읽어주는 소집지기를 시작하다 

전시가 끝나고 빈 벽을 볼 때면 마음이 공허해진다. 다시 빈 벽에 새로운 작품이 채워지면 마음이 든든해진다. 비우고 채우고, 채우고 비우는 것에 익숙해야 하지만 8번의 전시를 하고도 영 익숙해지지 않는다. 늘 전시가 끝나는 날은 아쉽고, 시작하는 날은 긴장되면서도 설렌다. 한 달 간의 겨울방학으로 숨고르기를 하고 2월 14일 새로운 전시로 문을 열었다. 선미화 작가님의  <사소하지만 사소하지 않은 것>  그림 전시회다. 감사하게도 선미화 작가님의 그림 에세이 <나의 서툰 위로가 너에게 닿기를> 책이 출간되는 시기와 맞물리기도 해서 더욱 기대가 되었다. 


올해 소집의 첫 전시회이기도 해서 다시 출발 선에 선 기분이었다. 전시회를 준비하면서 선미화 작가님과 즐거운 일들을 많이 계획하기도 했다. 올해 소집을 찾는 사람들과 함께 행복하고 성장할 수 있는 일을 많이 해보고 싶은 마음이 크기 때문이다. 한 달 간의 재충전을 하고 돌아와서 의욕도 충만했다. 오프닝 북콘서트도 준비하고, 전시 홍보도 더 적극적으로 했다. 특히 지난 11월 신나는 예술여행 때 소집에서 뜨거운 공연 무대를 선보여준 연희별곡 팀과 베짱이 농부의 미식 테이블이 함께 하는 오프닝 북콘서트이기에 그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기도 했다. 그런데 전시회가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코로나19. 12번 확진자가 강릉에 다녀간 소식이 전해지면서 불안감이 엄습했다. 강릉에서 어디를 갔었는지 동선이 빨리 나오지 않아서 시민들의 불안감을 더욱 가중시켰다. 2월 첫 주와 둘째 주. 이 시기만 무탈하면 다시 평온한 일상이 될 거라 생각했다. 오프닝 북콘서트는 눈물을 머금고 잠정 취소를 했다. 다음번을 기약하기로 했다. 전시회는 예정대로 시작하기로 했다. 전시 디스플레이를 하는데 한 작품 한 작품이 걸릴 때마다 울컥했다. 열심히 준비한 작가님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져서다. 즐거운 마음으로 시작을 해야 하는데, 무거운 마음으로 시작을 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 너무나 속상했다. 작가님께도 미안한 마음이 컸다. 


오프닝 북콘서트를 하려고 했던 날. 취소는 했지만 혹시라도 먼 걸음 오시는 분들을 위해 작가님은 그날 소집을 함께 지켜주었다. 조용히 자리를 지키면서 사이사이 와주시는 관람객을 함께 맞이했다.  자연스레 작품 도슨트를 해주었다. 한 작품 한 작품 숨어있는 이야기를 듣고 나니 그림이 다시 보였다. 이 이야기를 더 많은 사람들이 들었더라면 정말 좋았을 텐데. 아쉬운 마음이 컸다. 작가님은 자주 올 수 없는 상황이기에 전시회에 오는 들에게 작품 이야기를 잘 전하기 위해 나는 더 귀를 쫑긋하고 들었다. 이후 며칠 동안 전시회를 찾아오는 분들에게 작품 속 숨은 이야기를 전했다. 이야기를 듣고 나니 작품들을 더 세세하게 감상했다. 앞으로 더 열심히 이야기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상황이 조금씩 나아지는 듯했고 마음도 서서히 안정되었다. 그런데 불과 며칠 사이. 기하급수적으로 확진자가 늘어났다. 혹시 꿈꾸는 건 아닌지 싶었는데 꿈이 아니었다. 갈수록 상황은 악화가 되었다. 예정된 강의와 취재도 줄줄이 취소가 되고, 자체적으로 진행하려던 클래스도 취소를 했다. 일이 뚝 끊겨버리는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다. 어떻게 이 난관을 이겨내야 하지. 당장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막막함이 불안감을 더욱 키웠다. 나만 힘든 상황이 아닌데 모두가 힘든 상황인데도 해결은 각각의 몫이기에 앞으로 걸어 나갈 길이 캄캄하기만 하다. 이번 달은 어찌어찌 버틴다고 해도 다음 달, 그다음 달이 걱정이다. 여지없이 공과금 고지서들은 날아올 테고, 월세는 내야 하는 것이기에. 살아가야 하기에  어떻게 이 하루하루를 버텨나가면 좋을지 고민이 깊다.


고민만 하고 있는다고 딱 부러진 답이 나오는 것도 아니어서 뭐라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주일 후 다시 작가님이 소집을 찾아온 날. 함께 소집을 지키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전시 이야기를 온라인으로 전하자는 뜻이 모아졌다. 그리고 바로 실행을 했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을 거라 생각하면서 작가님과 나는 폰의 음성녹음기를 켜서 함께 나누는 전시 이야기를 녹음했다. 하지만 시작한 지 5분도 안 돼서 한 관람객이 찾아오셨다. 관람객이 가고 나면 다시 해야지 했는데 또 다른 관람객들이 사이사이 오면서 결국 그날 함께 이야기를 이어가지 못했다. 


작가님이 돌아가고 난 후 함께 이야기를 이어가지 못한 것이 영 아쉽기만 했다. 좋은 작품을 만나러 오지 못하는 사람들의 아쉬운 마음도 느끼면서 서툴지만 혼자라도 전시 이야기를 전해보자는 마음이 일었다. 바로 녹음 버튼을 누르고 지금의 심정, 그리고 전시회에 대한 이야기, 하고 싶은 이야기를 그대로 녹음을 했다. 그리고 곧바로 사진과 배경 음악을 넣고 1편을 만들었다. 그리고 업로드를 했다. 그림 읽어주는 소집지기 1편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내가 내 목소리를 듣는 것이 참 부끄러웠다. 너무 내 걱정만 앞서있음에 부끄럽기도 했다. 지금 많이 불안해하고 있다는 것도 여실히 느꼈다. 임산부인 둘째 동생이 1편을 들으면서 그날은 조금 편히 잠이 들 수 있었다는 이야기에 힘을 얻기도 했다. 홑몸이 아니어서 더 걱정이 클 텐데. 큰 힘이 되어주지 못하는 게 미안하기만 했다. 이렇게라도 동생의 불안한 마음을 달래줄 수 있다면 더 분발해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보면 늘 한 걸음 나아가게 한 것은 위기를 맞았을 때였다. 자신의 건강뿐 아니라 서로서로의 건강을 지켜주는 것이 가장 중요한 시기이기에 소집도 당분간 임시 휴관을 하기로 했다. 온라인으로라도 더 열심히 전시이야기를 전해야겠다는 마음이 더 절실해졌다. 지금 나는 그림 읽어주는 소집지기 2편을 준비하고 있다. 어쩌다 시작을 하게 되었는데 어쩌면 이 새로운 시작이 지금의 무기력을, 막막함을, 불안함을 이겨나가게 해주는 힘이 되지 않을까 싶다. 사소한 일상이 몹시도 그립다. 지나가며 나누던 인사, 마주 보고 앉아 나누던 대화, 건네는 술 한 잔, 계절을 느끼는 바람.  이 모든 것이 선물이었음을 이제는 안다.  



*유튜브 '소집이야기여행'에서  그림 읽어주는 소집지기 전시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c_6C0DhkJu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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