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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향여행자 May 09. 2020

여행 작가가 왜 갤러리를 하는 걸까?

소집으로의 출근길은 또 다른 여행길이다


여행작가가 왜 갤러리를 하는 걸까?


아버지와 어떻게 일을 하는지에 대한 질문 다음으로 많이 받은 질문이다. 그래서 오늘은 이 질문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보려 한다.


처음에 공간을 준비한다고 했을 때 책방을 예상한 사람들이 많았다. 글을 쓰는 일을 하고 책을 좋아하고 책을 만드는 일도 하니 당연히 책방일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문을 연 날 갤러리라는 걸 알았을 때 사람들은 놀랐다. 관련된 일을 했던 것도 아니기에 많이 의아해했다.

 

우선 대부분의 사람들이 예상한 책방을 하지 않은 이유부터 풀어야겠다. 나는 책방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한때 책방 투어에 푹 빠진 때도 있었다. 첫 책 <뷰레이크타임>을 독립출판으로 만들게 된 것도 책방 여행을 한 경험 덕분이다. 자신이 직접 기획하고, 원고를 쓰고, 디자인하고, 유통까지 전 과정을 모두 소화하는 것이 대단했고 멋졌다. 첫 책을 직접 만들고 나서 책방에 책을 입고하면서 또다시 책방 투어를 다녔다. 전보다 책방 주인들과 좀 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 자연스레 책방 주인들의 고충을 듣게 되었다. 책을 읽기만 하고 구매하지 않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라고 했다. 책 내용을 몰래 찍어가는 진상 손님들도 많았다. 책을 만드는 과정이 힘들다는 것을 아는 나로서는 샘플 책도 소중하다.


'내가 만약 책방을 한다면' 하는 상상을 해보았다. 책을 함부로 대하는 사람을 보면 화가 치밀어서 매일매일 표정이 일그러지는 내가 예상되었다. 책을 잘 판매할 자신도 없었다. 매일매일 입고되는 책을 정리하는 일, 달마다 혹은 분기마다 정산을 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책방 운영만으로는 매달 임대료, 공과금을 감당하긴 어렵다는 고민까지. 책방의 속사정을 들을 때마다 더욱 자신이 없어졌다. 그렇게 책방은 공간 후보 선택지에서 일찌감치 제외되었다.


다음으로 사람들이 예상하는 공간은 카페였다. 아빠 역시 카페를 하고 싶어 하셨다. 음식점이 밀집된 주변 환경에서 위치상 딱이었다. 하지만 나는 카페를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평소에 커피를 즐겨 마시는 것도 아니고, 카페를 자주 가지도 않았다.


책방은 너무 알아서 할 자신이 없었다면,
카페는 너무 몰라서 할 자신이 없었다.
그렇다면 왜 갤러리였을까.
      

큐레이터 경험이 있는 것도 아니고, 갤러리 운영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보러 다니는 것을 좋아했다. 여행을 갈 때마다 그곳의 박물관을 찾고, 갤러리를 찾곤 했다. 한 작품 한 작품 마주하면서 생각을 깨워주기도 하고, 때때로 위안을 얻기도 했다.


전시회를 직접적으로 해본 건 세 번의 경험이 전부다. 첫 전시회는 용인에 있을 때 여행작가 아카데미에서 한 공동 사진전이었다. 사진과 여행 에세이가 어우러진 사진전이었다. 여행 사진 중 가장 좋아하는 사진 한 장을 골랐다. 여러 작품들 사이에 딱 한 점이 걸려 있었지만 처음이어서 그런지 마음을 꽉 채워주는 경험이었다. 이후 고향으로 돌아와 아빠와 함께 전시회를 했다. 2017년 11월. 초대전으로 매월당 김시습 기념관에서 아빠의 석호 사진과 함께  글과 영상을 담은 전시회를 열게 되었다. 그리고 1년 후, 2018년 12월. 강릉시립미술관의 송년특별기획전에 초대를 받았다. 뷰레이크타임 책을 기반으로 고향여행의 시간을 담은 전시회를 열었다. 그 전시는 3년 동안의 고향 여행 이야기를 풀어낸 전시이기도 했다.  세 번의 전시 경험은 소중한 추억이 되었다. 그리고 갤러리 공간을 꿈꾸는데 큰 용기가 되었다.

 

전시회를 관람할 때마다 아쉬웠던 점은 작가의 작품만 마주하고 돌아가야 하는 점이었다. 작품에 대해서 작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그럴 기회가 마땅치 않았다. 공간을 준비하면서 작가와 관람객이 자주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시 때마다 작가 만나는 날을 갖고, 작가와 소통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꾸준히 열었던 이유다. 책을 판매할 자신은 없지만, 책에 기반한 전시회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을 꿈꿨다. 책을 펼치기 전까진,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전까진 그 책의 진가를 모르는 게 늘 아쉬웠다. 전시회를 통해 책과 자연스럽게 가까워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했다.  

    

소집은 문을 열고 들어오면 한눈에 들어오는 작은 갤러리다. 큰 전시회장만 경험한 사람들에겐 너무나 작은 규모에 실망감을 줄 수도 있다. 가끔 ‘이게 다야?’ ‘조금만 더 컸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분들도 있었다. 또 어떤 사람들에겐 낯설지만 재밌는 갤러리이기도 했다.  전시 문턱을 낮춰 부담 없이 관람할 수 있길 바랐다.


지난 해에는 지역 작가, 지역의 이야기를 담은 전시를 우선적으로 열었다. 작가들에게 소집은 개인전을 하기에 부담 없는 장소로 사랑받기도 한다. 작은 규모가 오히려 작가들에게 부담감을 덜어주는 것이다. 나는 전시를 준비하는 작가를 만나는 일이 새로웠다. 그동안 총 9번의 전시를 열었다. 전시를 준비하는 작가들의 모습을 앞서 만나는 건 이 일의 가장 큰 기쁨이고 새로운 경험이다. 어떻게 전시회를 준비해 왔는지, 작품에 대한 애정을 깊이 느낄 수 있었다. 작가를 사랑하는 관람객을 만나는 것 또한 선물이었다.


전시회를 철수하는 날엔 늘 마음이 헛헛해진다. 채우고 비우고를 반복하는 공간이지만, 여전히 철수 날은 정든 사람을 떠나보내듯, 정든 작품들을 떠나보내야 해서 며칠간은 남몰래 후유증을 앓기도 한다. 그러다가 다시 새로운 작품이 걸리면 헛헛한 마음이 채워진다. 전시회를 철수하고 다음 전시회를 앞두고 보통 일주일 동안 휴관 기간을 갖는다. 이 사이클이 나는 좋다. 익숙해지면 권태로움이 오는 나에게 소집은 권태로울 틈을 주지 않는다.  


여행 글쓰기와 소집을 지키는 일. 두 가지 일을 병행하는 일이 쉽진 않지만 소집지기를 하면서 여행자를 맞이하는 것 또한 기쁨이다. 서툰 점이 많지만 너그러이 생각해주신 덕분에 이야기를 나눌 용기를 낸다. 정말 다양한 경험을 하는 하루하루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이곳 소집에서 나는 매일 여행을 하고 있다. 소집으로의 출근길은 또 다른 여행길이다.


소집으로 가는 길 - 사진 고종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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