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게 되면 잃는 것이 있다. 지누아리를 찾는 여정을 하면서 지누아리도 어쩌면 그런 단어가 됐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영진에 사는 한순복 해녀 선생님을 만났을 때 그랬다.
40여 년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살아온 그녀를 만났다. 만나는 날을 정할 때 어려움이 있었다. 비가 오거나 파도가 센 날에 찾아오라고 했다. 바다에 들어가지 못하는 날이 곧 그녀의 휴무날이기 때문이다. 날씨 예보를 열심히 보는 며칠이었다. 확실히 비가 온다는 전날에 그녀와 약속을 잡고 만날 수 있었다. 부슬부슬 비가 오는 아침. 초코송이와 함께 그녀를 만났다.
"어려서는 강릉에 살다가 (결혼해서) 여기 와서 바다에 살더니 그렇게 바다에 들어가게 되더라고."
바다 곁에 살게 되면서 자연스레 물질을 시작하게 된 그녀. 처음엔 어지럽고 차멀미 나는 것처럼 속도 좋지 않았다. 배우느라 애를 많이 먹었다고 한다. 시간을 이겨나가며 바다를 알아갔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이제는 삶의 전부가 된 바다. 파도가 센 날과 비가 오는 날을 제외하곤 매일 바다에 들어간다고 한다. 이전에 중앙시장에서 만난 금진 해녀 선생님의 이야기를 전했다. 그분을 잘 안다고 하며 자신도 시장에 나가 지누아리를 판매한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곧바로 초코송이가 물었다.
혹시 사계절 미용실 앞에서 파는 분이신가요?
'네'라고 답하는 그녀. 중앙시장에서 금진 해녀 선생님 말고 또 한 분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분을 만나기 위해 몇 차례 시장을 찾았지만 도통 만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만나고 싶었던 분이 지금 우리 앞에 있는 것이다. 결국 만날 사람은 만나는구나 싶었다. 초코송이 어머니와 외숙모가 그녀의 단골손님이기도 했다. 어머니 사진을 보여드리니 바로 알아보셨다.
어머여라. 이 분이네. 물지누아리 사는 아주머니다.
돋보기를 쓰고 사진을 찬찬히 보면서 손님과의 추억을 떠올리셨다.
"추석 무렵이 되면 꼭 사가시더라고. 할머니 연세가 많다고 하더라고. 아주 보드라운 거 찾아. 치아가 좋은 분은 보드라운 거 안 좋아하세요. 머리카락 같아서. (보드라운 걸 찾으셔서) 따로 모아놨다가 드리곤 했는데. 딱 그것만 사러 오시지 여느 때는 안 오시더라고."
해녀 선생님과 어머니의 추억 이야기를 가만 듣고 있던 초코송이는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언제 돌아가셨는지 물으며 해녀 선생님은 한 번 더 물끄러미 사진을 보셨다. 30년 넘게 시장에서 지누아리를 팔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만나셨을까. 그러면서도 어느 한 사람 소홀함 없이 선명히 기억하는 그녀의 기억력이 놀랍기도 했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오랜만에 듣는 집 전화 벨소리도 정겨웠다. 전화를 한 사람은 다름 아닌 지누아리를 찾는 손님이었다. 초코송이와 나는 눈웃음을 지었다. 지누아리를 사기 위해 이렇게 집으로 찾아오는 단골손님도 있었다. 지누아리 다섯 봉지 예약 주문을 받고 나서 다시 그녀는 우리 앞에 앉았다. 지누아리가 참 많은 걸 품은 마법의 단어라는 걸 느끼는 순간이었다.
*한순복 해녀 선생님과 함께 나눈 지누아리 이야기는 2편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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