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은 식물원인데, 필름을 현상하고 인화하는 암실 공간이라고?’. 정반대의 의미인 이름부터 궁금증을 자아낸다. 식물원 공간을 연 나소희, 원지유 작가는 소집에서 2021년 3월에 <오늘을 담습니다> 전시를 진행하며 만나게 되었다. 전시 준비하는 과정에서 공간 준비 소식을 함께 듣게 되었다. 공간을 여는 날이 몹시 기다려졌다. 2021년 3월 22일, 식물원을 찾아간 첫날. 첫눈에 반했다. 봄, 여름,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찾아온 식물원에서 두 사람을 만났다.
식물원, 안녕한가요?
식물원은 필름을 쓰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다. 강릉 명주동에 자리하고 있다. 두 사람의 주요 작품 소재가 ‘자연물’이라는 공통점, 필름은 빛이 없는 곳에서 작업해야 하지만 식물은 충분한 빛이 필요하다는 정반대의 이미지를 가진 점에서 ‘식물원’이라는 이름을 짓게 되었다. 코로나19와 함께 한 1년. 나소희, 원지유 작가에게 어떠한 1년이었을까.
“사실 저희 식물원은 코로나가 시작되고부터 시작이 돼서 ‘지금 상황이 나은 걸까 ’아니면 ‘낫지 않은 걸까’ 사실 판단이 잘 안 돼요. 코로나와 함께 자라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당연히 코로나 이전이 나았겠죠. 그런데 공교롭게도 코로나가 시작되고부터 강릉에 ‘신생 문화공간이 많이 생겼다’는 느낌이에요. 어쩌다 보니 이 신생 공간들이 코로나와 같이 가고 있는 느낌이 들기는 해요. 이게 경제적으로나 상업적으로나 맞는 방향으로 가고 있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어려운 시기에 컸으니까, 좋은 방향이 열리지 않을까’ 기대는 해봅니다.”
- 원지유 작가
공간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코로나19가 시작을 망설이게 하는 요소는 아니었을까 궁금했다.
“저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 식물원이라는 공간을 처음 기획했을 때부터 크게 막 대박 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이 공간은 정말 아끼는 사람이 왔으면 좋겠다’, ‘그런 사람들이 처음에는 작게 시작해서 좀 더 이렇게 내실을 단단히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거든요. 코로나여서 힘든 점도 있었지만, 코로나였기 때문에 좀 더 차근차근 준비하지 않았나 싶어요.”
- 나소희 작가
만약 누군가 내게 같은 질문을 한다면, 선뜻 답하기 어렵지만 어쩌면 시작을 망설이지 않았을까 싶다. 어려운 상황 속에도 처음의 계획대로 공간을 준비해나간 두 사람의 모습에서 단단한 마음이 느껴졌다.
“물론 이 공간이 잘 돼서 매출이 잘 나고, 뭔가 일어나면 정말 더할 나위 없이 좋겠죠. 여기 식물원에만 매진할 수 있다면 더 좋겠지만, 우리가 방향성을 잘 잡아야 그다음에 뭔가 어떤 가지를 뻗어 나갈 때 디딤돌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서 그런 생각은 크게 많이 안 했던 것 같아요.”
- 나소희 작가
로컬에 다가간 1년
차근차근 자신들의 속도로 나아가는 두 사람이었다. 그러면서 식물원 공간을 사람들이 좀 더 편안하게 찾아주길 바라며,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노력을 많이 하고 있었다.
“저희가 하는 일이 서울, 수도권에서는 활발하게 활동하는 사람들이 워낙 많아서 접할 수 있는 기회도 많아요. 처음에 식물원을 오픈했을 때는 서울분들이 더 많이 오기도 했었고요. 그래서 저희는 로컬에 잠재된 사람들을 어떻게 찾을 것인가가 좀 이슈였어요. 강릉 식물원을 검색하면 솔향수목원으로 검색이 되거든요. 인프라를 많이 쌓아야 했어요. 로컬에서 할 수 있는 방향으로 프로젝트를 지원하려고 했고, 감사하게도 도와주는 사람들이 많은 덕분에 강릉에서 큰 전시를 열기도 했습니다.”
- 원지유 작가
두 사람은 그 어느 때보다도 바쁘게 1년을 보냈다.
“로컬에 다가가려고 되게 애를 많이 썼어요. 저희가 강릉시문화도시지원센터 사업을 통해서 로컬 분들을 만나서 작업을 하게 됐는데 좋은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이렇게 이런 공간이 있다는 것을 알릴 수 있어서 좋았고, 기은 작가님과도 함께 해서 좋았는데 어떠셨나요?”
- 나소희 작가
그들의 제안으로 함께 하게 된 <유씬즈> 프로젝트는 한 마디로 정말 좋았다. ‘사진에 글 입히기’를 주제로 함께 했다. 사진과 글을 매개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시간을 가졌다. 기다림 끝에 마주한 필름 사진들은 저마다의 이야기를 품고 있었다. 같은 장소에서 다양한 시선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참여자들의 열정 덕분에 덩달아 힘이 났다. ‘사진은 이래야 한다’, ‘글을 이렇게 써야 한다’는 틀을 두지 않았다. 덕분에 참여자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편하게 풀어내고, 온전히 그들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을 완성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은 강릉 뿐 아니라 다른 지역의 문화공간과 협업하며 경험을 넓혀갔다. 이 모두가 식물원 덕분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이런 일도 할 수 있구나’. 신기하고 재밌는 1년이었다고 한다. 나 작가는 공간에 대한 고마움이 갈수록 커진다고 한다.
“이 공간이 있어서 나아가는 방법이 있고, 이런 경험을 통해 다음 레벨을 준비할 수 있는 거죠. 공간과 함께 미약한 발전이 있었다고 생각해요. 경험할 수 있어서 좋았고, 사람들을 만나서 좋았어요. 작년에 우리가 했던 전시나 프로젝트를 통해서 다음에는 어떤 재미난 일들이 있을까 기대가 되기도 해요.”
- 나소희 작가
고민의 지점들
원 작가 역시 공간을 통해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어 고마움이 크지만, 공간 유지에 대한 걱정도 크다고 말한다.
“저는 사진도 사진이지만 경영자로서, 식물원의 가장으로서 어떻게 먹여 살릴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을 안 할 수가 없어요. 이 공간을 유지하기 위해 필수 비용이 들잖아요. 이러한 것을 어떻게 채울 것이며 그 이외의 것들은 또 어떻게 채울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작년에 외부 일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내부 일도 내부 일이지만, 외부 일을 해야 이 공간이 유지가 되고, 이 공간이 유지가 돼야 우리가 어떤 곳에서 파생이 또 되니까요. 그런 것들의 어떤 굴레에 빠져 살지 않았나 싶어요.”
- 원지유 작가
공간 덕분에 즐거운 경험을 많이 하지만, 공간을 유지하고, 지켜가기 위한 경제적인 고민도 무거울 수밖에 없다. 첫해에는 지원 사업을 통해 성장하는 부분이 있었지만, 지원 사업이 끝난 후에 스스로 온전히 섰을 때, 공간에 대한 앞으로의 방향성에 대해서도 고민을 많이 하고 있었다. 어느 쪽으로 더 공부하고, 어떤 연구를 해야 할지 그 기로에 서 있는 두 사람이었다.
“우리가 노력해서 유지가 되는 거라면 정말 좋은 거겠지만 필름 산업 자체가 죽어버리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지기 때문에 그런 거에 대한 수명에 대해서 요즘 되게 많이 느끼거든요. 진짜 다가오는 리얼 수명에 대해서도 많이 느끼는 중이라서 어떻게 이것을 유지할 수 있을까, 과연 얼마나 우리가 버텨낼 수 있을까, 고민이 많은 기로에 서 있는 것 같아요.”
- 원지유 작가
필름 카메라를 수리하고 사용하는 비용이 많이 든다고 한다. 필름 값도 만만치 않다. 옛날에는 일회용 카메라에 2천5백 원짜리 필름이 들어갔는데, 지금은 2만 원이라고 한다. 이제는 ‘귀족 취미’라고 할 정도다. 부담감도 크지만, 카메라를 사고파는 과정에서도 필름 카메라의 현실을 보게 된다고 한다. 전보다 제대로 된 카메라가 없고, 제대로된 필름 하나 없는 것을 느끼면서 '수명을 다해 가는 거라서 그런 건가' 하는 생각도 많이 든다고 한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하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름을 쓰는 사람들은 존재할 것이고, 그 사람들 속에 우리는 어떻게 하면 이 즐거움을 더 유지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끊임없이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