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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향여행자 Apr 18. 2016

사랑이 흐르는 호수, 경포호

백조의 호수여행 - 경포호 1편 

경포호는 고향에서 필자가 제일 좋아하는 장소다. 고향으로 돌아와 가장 좋은 건 호수를 언제든 갈 수 있는 것이다. 집에서 호수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는 것이 요즘 필자의 취미다. 필자는 호수의 맨 얼굴을 보는 겨울을 좋아한다. 하지만 이곳이 가장 아름다울 때는 봄이다. 


벚꽃이 활짝 핀 호수는
사계절 풍경 중 하이라이트다. 


경포대 초입 벚꽃길-고종환 제공 


올해 경포대 벚꽃축제는 4월 5일부터 시작되었다. 벚꽃을 처음 보는 것도 아닌데 그 모습이 사랑스러워 한참을 보고 또 보았다. 겨울엔 호수 한 바퀴를 도는데 1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 


봄은 눈으로 한 바퀴,
귀로 한 바퀴,
코로 한 바퀴를 도는 듯해서
      호수에 머무는 시간이 꽤 길어진다.       


낭만 데이트 장소인 경포호. 두 손 꼭 잡고 걸어도 좋고, 자전거를 타고 함께 아름다운 풍경을 담기도 좋다.


박신과 홍장의 사랑이야기가 시작되는 길에 이르렀다. 서로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동상은 인기 포토존이다. 그들의 로맨스는 고려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박신은 강원도 안찰사로 부임해 강릉을 순찰하게 된다. 그러던 중 절세미인으로 소문난 홍장을 만나게 된다. 그는 그녀를 보고 첫눈에 반한다. 그의 열렬한 구애에 홍장도 마음을 연다. 


홍장을 보고 첫눈에 반해 열렬한 구애를 펼치는 박신 - 고종환 제공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내던 두 사람은 갑작스레 이별하게 된다. - 고종환 제공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은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그러나 이 둘의 사랑을 하늘이 질투한 것인지 갑작스레 이별하게 된다. 박신이 다른 곳으로 순찰을 가게 된 것이다. 홍장에 대한 그리움이 나날이 쌓여만 가는 박신. 그는 서둘러 일을 마치고 강릉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그녀가 보이지 않는다. 친구인 강릉부사 조운흘에게 홍장의 행방을 묻는다. 장난기가 발동한 조 부사는 그에게 홍장이 밤낮으로 그대를 생각하다 죽었다고 말한다. 


홍장의 소식에 큰 충격을 받는 박신. 뒤늦은 후회와 그리움이 사무친다. - 고종환 제공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박신은 절망한다. 상사병으로 갈수록 수척해진다. 조 부사는 박신에게 경포호에 달이 뜨면 선녀가 된 홍장이 내려올지도 모른다고 일러준다. 박신은 죽은 그녀라도 만나고 싶은 마음으로 호수로 향한다. 두 사람은 극적으로 재회한다. 홍장은 그의 절실한 마음을 확인하게 되고, 박신은 그녀가 죽지 않았다는 사실에 세상을 다 얻은 듯 기뻐한다. 두 사람은 더욱 깊이 사랑하며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는 후문이다. 


극적으로 재회한 두 사람. 그들의 사랑은 지금도 경포호에서 진행중!


그들의 사랑 이야기가 흐르는 호수를 보며 내 사랑을 돌아보게 되었다. 내 사랑 이야기를 털어놓는 게 부끄럽다. 사랑은 필자의 아킬레스건이기 때문이다. 사랑 앞에서 늘 움츠러든다. 사랑에 깊은 상처가 있는 건가. 그랬다면 이렇게 작아지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 반대라 문제다. 누군가를 깊이 사랑한 적이 없다. 그랬으니 깊은 상처를 받아본 적도 없다. 


경포호는 곳곳에 앉아서 쉬어갈 수 있는 벤치가 많다. 호수를 함께 바라보며 이야기 나누기 좋다.

       

한때는 상처를 받을까 두려워 사랑을 시작하지 못했다. 이러다 영영 연애 한 번 못하는 건 아닌가 싶었다. 스물네 살에 첫 연애를 했다. 그 뒤에 한 번 더 연애를 했다. 두 연애 모두 두 계절을 나지 못했다. 사랑을 알기에는 너무 짧은 연애였다. 나이가 서른이 넘었지만 아직 사랑을 잘 모른다.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려고 했다. 나를 좋아해 주는 건 고마웠지만 좀처럼 마음을 열지 못했다. 다가오지 못하게 선을 그었다. 그 반대 입장이 되었을 때 알았다. 나는 누군가의 마음에 상처를 남긴 못된 사람이었다. 그 사람의 진심을 헤아리지 못한 것을 반성했다. 


호수를 찬찬히 보아야 하듯, 사람도 찬찬히 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는 일은 드물었다. 어쩌다 그런 사람이 나타나면 마음이 너무 앞서가서 문제였다. 밀고 당기기는 답답해서 못한다. 마음 가는 대로 표현했다. 감정을 컨트롤하지 못해 마음의 속도를 맞추지 못했다. 솔직한 것이 되려 상대를 부담스럽게 했다.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고 말았다. 처음엔 내 마음을 외면하고 나를 존중하지 않는 상대가 미웠다. 마음이 정리되고 나서 알았다. 나 역시 상대의 입장을 존중하지 않고 배려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마음을 표현한 것에는 후회가 없지만 상대의 마음 속도를 맞추지 못한 건 후회가 된다. 


꽃 피는 때가 있듯, 사랑을 알아야 할 때가 있다.


사랑할 나이는 정해져 있지 않다.
하지만 사랑을 알아야 할
나이는 정해져 있는 것 같다. 


서른이 넘어 사랑을 알려고 하니 뒷북을 치는 것만 같다. 20대 때 누군가와 열렬히 사랑했다면 내가 얼마큼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인지, 또 내가 얼마큼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인지를 알았을 것이다. 얼마큼 깊이 사랑할 수 있는지, 얼마나 깊이 아파할 수 있는지도 알았을 것이다. 


우리에게 사랑은 늘 어려운 숙제가 아닐까.
그럼에도 사랑을 기다린다.


인연은 어딘가에 있다고 믿으며 뒷짐만 지고 기다렸다. 사랑은 어렵다며 머뭇거렸다. 후회된다. 


이제라도 사랑을 알고 싶다. 

누군가 다가온다면 같이 다가가는 노력을 할 것이다. 다가가고 싶은 사람이 나타난다면 그 사람의 발걸음을 맞출 것이다. 내년엔 나도 이 벚꽃 길을 누군가와 함께 걸었으면 좋겠다.  


관동8경 중 하나인 경포대. 야경도 근사하다. 경포호를 내려다보며 쉬어가기 좋다. - 고종환 제공 

여행 꿀팁  

1. 주소 : 강원도 강릉시 저동 

2. 자전거 대여료 : 1시간 기준 6인승 30,000원, 3인승 20,000원, 2인승 10,000원, 1인승 5,000원. 호수 초입 곳곳에 자전거 대여소가 있다.   

3. 좀 더 운치 있게 호수를 감상하고 싶다면, 경포대 정자에 앉아 호수를 바라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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