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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향여행자 Apr 18. 2016

사랑을 해야 할 때,
허균·허난설헌 기념공원

백조의 호수여행-경포호 2편 

고향이 강릉이라고 하자 ‘글을 잘 쓸 수밖에 없는 곳에서 태어났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렇다. 강릉은 예부터 많은 문인이 배출되었다. 그중에서 필자가 특히 좋아하는 문인이 있다. 허난설헌이다. 그녀가 태어나고 자란 생가터가 집에서 걸어서 15분 거리다. 그래서 경포호만큼 자주 간다. 


벚꽃 핀 허난설헌 생가. 필자가 좋아하는 벤치에 앉아 봄을 느꼈다.


만약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지만 허난설헌을 생각하면 ‘만약에’라는 말을 자꾸 되뇐다. 


만약에 그녀가 남자로 태어났더라면.
만약에 그녀가 조선시대가 아닌
다른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만약에 그녀가 결혼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그만큼 안타까움이 크기 때문이다. 허난설헌은 스물일곱 살에 세상을 떠났다. 그녀가 세상과 이별하고 나서야 그녀의 글들이 빛을 보았다. 그녀의 유언으로 방 한 칸은 족히 넘는 유작들이 모두 불태워져 사라졌다. 그럼에도 남아있는 그녀의 글들은 깊은 울림을 준다.


 

그녀는 일찍 세상을 떠났지만 그녀의 글은 지금까지 숨 쉬며 깊은 감명을 준다.

    

허균·허난설헌 기념관에서 그녀의 작품 <채련곡>, <규원가> 를 오랜만에 다시 읽었다. <채련곡>을 읽고 나면 그녀의 마음따라 덩달아 수줍은 미소를 짓게 된다. 누군가를 좋아하면서도 혹여 그 마음이 표가 날까 부끄러운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순수하게 누군가를 좋아한 그 마음이 연꽃보다 아름답다. 내 첫사랑이었던 초등학교 5학년 첫 짝꿍 얼굴이 떠올랐다. 그저 좋아하는 마음 하나면 충분한 시절이었다. 종종 그가 궁금하지만 만나고 싶진 않다. 만날 용기도 없지만 순수하게 누군가를 좋아했던 그 마음을 잃고 싶지 않다. 마음에 그리는 사람으로 그냥 남겨두고 싶다. 


허난설헌의 채련곡.그녀의 수줍은 마음이 느껴진다.
허난설헌의 죽지사3. 강릉에서의 추억을 담아 지은 한시다.


조선시대는 여성에게 관대하지 않았지만 허난설헌의 집안은 딸에게 관대했다. 아들딸 구별 없이 똑같이 교육의 기회를 주었다. 그녀는 오빠들과 남동생 사이에서 당당하게 글을 배웠다. 시를 짓고 그림을 그리는 재주가 뛰어났다. 그러한 가풍에서 자라 왔으니 결혼생활이 답답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열다섯 살에 결혼해서 12년 동안 불행의 연속이었다. 시어머니는 똑똑한 며느리가 탐탁지 않았다. 고된 시집살이를 해야 했다. 그녀의 남편은 아내를 따뜻하게 보듬는 성격이 아니었다. 사랑하는 두 아이마저 돌림병으로 잃고 말았다. 유산의 아픔까지 겪었다. 어디에 마음 둘 곳이 없었다. 혼자 그 슬픔을 다 감내해야 했다. 그녀가 마음을 달랠 길은 글 밖에 없었을 것이다. 오랜만에 다시 읽어본 <규원가>는 그래서 더 마음을 아릿하게 했다. 


고향을 많이 그리워했던 허난설헌. 그녀가 나고 자란 생가터

         

결혼이 필수가 아닌 선택이 된 시대다. 그녀가 만약 이 시대를 살고 있다면 과연 결혼을 택했을까. 묻고 싶었다. 필자는 아직 결혼할 생각이 없다. 한때는 혼자 살 거라고 선언하기도 했다. 내 삶이 없을 것 같아서, 얽매이는 것이 싫어서 결혼하기 싫다고 말했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실은 내 자신이 결혼 배우자감으로 꽝이기 때문이다. 프리랜서다 보니 수입이 일정하지 않다. 돈을 버는 족족 여행을 가니 모은 돈도 없다. 4녀 중 장녀다 보니 그 책임감이 아무래도 부담스럽다. 


허균 허난설헌 생가터의 봄길 

결혼정보회사에서 가입 권유 전화가 자주 왔다. 나의 상황들을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그 후로 더는 전화가 오지 않았다. 역시 결혼 배우자감으로 마이너스구나 싶어 씁쓸했다. 실제로 나에게 호감을 보였던 사람도 이런 이유로 더 다가오지 않았다. 그런 경험들 때문인지 더 자신이 없었다. 설령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이 나타나도 내가 머뭇거렸다. 언젠가 부담이 될 것 같아서다.    


솔향 가득한 초당마을숲. 복잡한 마음을 정돈하기 좋다.


결혼을 멀리하다 보니 연애까지 멀리했다. 나이가 서른이 넘으면서 더 그랬다. 나이를 탓하고 싶진 않지만 이럴 땐 나이를 탓하게 된다. 나는 그렇지 않은데 상대는 연애와 결혼을 동일선상에 두는 나이로 내 나이를 규정했다. 그래서 마음이 통하는 사람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사랑을 시작하는 게 더 어렵기만 하다. 사랑을 주저하게 만드는 이유가 많아진 세상이라 안타깝다. 이 고민을 허난설헌에게 털어놓는다면 나에게 이런 말을 해줄 것 같다. 


적어도 당신은 사랑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세상에 살고 있지 않느냐고.
        그러니 사랑할 수 있을 때 마음껏 하라고.       


여행 꿀팁 

1. 주소 : 강원도 강릉시 난설헌로193번길 1-29

2. 2016 난설헌 허초희 문화제가 4월 23, 24일 강릉 초당 생가에서 열린다. <호수에 달빛 환희 밝아오면> 이라는 주제로 인형극 공연, 솔밭 들차회, 초당 솔밭음악회, 난설헌 글짓기대회 등이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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