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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향여행자 May 27. 2016

필경사, 심훈의 뜨거운 마음이  여전한 이유

백조의 호수여행-당진 석문호 2편

필경사를 찾았다. 시 <그날이 오면> 과 소설 <상록수>로 마음에 새겨진 작가, 심훈 선생의 집이다. 그는 서른한 살이 되던 해 부모님이 살고 계신 당진으로 내려온다. 그리고 이곳에 집을 지어 집필에 전념한다. 소설 <상록수>를 비롯 <영원의 미소>, <직녀성> 이 바로 이곳에서 완성되었다.    

 

소설 <상록수>의 남녀 주인공 조형물이 제일 먼저 관람객을 맞이한다.

필경사를 돌아보기 전 심훈기념관부터 관람하기로 한다. 책을 펼쳐 든 심훈 선생의 동상이 서 있다. 그 옆에 새겨진 시 <그날이 오면>을 오랜만에 읊조려 본다. 전시공간은 심훈 선생의 삶을 기승전결의 흐름으로 구성하였다. 그는 짧은 생애를 살았지만 독립운동가, 시인, 기자, 방송국 프로듀서, 영화감독, 소설가에 이르기까지 누구보다 뜨겁게 살았다. 민족에 대한 사랑과 독립에 대한 열망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심훈의 삶을 따라가 보는 여정. 2014년 9월에 개관한 심훈기념관


심훈기념관이 건립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를 누구보다 절실히 기다렸던 사람이 있다. 심재호 선생이다. 그는 심훈 선생의 셋째 아들이다. 심훈 선생이 타계하기 다섯 달 전 이곳 필경사에서 태어났다. 그의 기억 속에 살아있는 아버지의 모습은 없다. 하지만 그는 살아가면서 아버지의 삶을 더듬어갔다. 전국을 돌며 아버지의 유품을 모으고, 자료를 수집하여 심훈전집을 완성했다.       


조국 독립을 향한 강한 의지와 어머니를 향한 애틋한 마음이 담긴 <감옥에서 어머니께 올리는 글월> 원고 사본.


기념관이 세워지는데도 그의 역할이 컸다. 심훈 선생의 손때 묻은 책상, 원고, 사진 등 50여 년동안 모으고 간직한 아버지의 유품을 기꺼이 기증했다. 문화재청에서 여러 차례 제1급 수준의 문화재로 지정하겠다고 등록 요청을 해왔지만 거절했다. 아버지의 유품은 모두 필경사로 돌아와야 비로소 살아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기다렸던 이유다. 2014년 9월. 살아있는 기념관이 되길 바라는 그의 뜻이 마침내 이루어진다.   


심훈 선생은 1924년 동아일보 사회부 기자로 입사했다. 선생의 뜻을 조금이나마 펼 수 있는 지면을 갖게 되었다.


필경사를 돌아본다. 필경은 그의 시집 원고 중에 있는 시의 제목에서 따온 것이다. 말 그대로 붓으로 밭을 가는 집이란 뜻이다. 그 왼편으로 심훈 선생이 잠든 묘소가 있다. 기념관이 건립되기 앞서 심재호 선생은 경기도 안성에 있는 아버지의 유골을 이곳으로 이장했다. 72년 만에 작품의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로써 더욱 귀중한 공간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아담한 팔작지붕의 목조집 형태인 필경사. 충청남도기념물 제107호로 지정돼 있다.

지금도 그는 아버지의 발자취를 따라가고 있다. 올해 초 <심훈을 찾아서>를 발간하기도 했다. 오랜 세월 이를 지켜가는 책임감이 막중했을 터. 그의 노고가 있었기에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심훈 선생의 뜨거운 마음을 여전히 느낄 수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옛 전시관 앞 비석에 새겨진 <그날이 오면>을 다시 한번 읊어보게 된다.

 

여행 꿀팁   

1.주소 : 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 상록수길 97

2.심훈기념관 관람시간 : 10:00 ~ 17:00 (매주 월요일 휴관/점심시간 12:00~13:00).

3.입장료 :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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