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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향여행자 Feb 22. 2016

눈 맞은 청평사

백조의 호수여행-소양호 2편

눈 맞은 청평사     

청평사 선착장에 도착과 동시에 뜻밖의 선물을 받았다. 눈이 오기 시작했다. 점점 눈이 펑펑 오면서 돌아가는 배편이 조금 걱정되었다. 매표소 직원에게 물으니 눈이 와도 배는 운항한다고 답한다. 그제야 마음 놓고 풍경을 본다.



청평사로 가는 길. 평소엔 걸음이 빠른 나지만 속도를 한껏 줄였다. 평소처럼 앞만 보고 걸어간다면 손해다. 옆도 보고 뒤도 돌아봐야 한다. 강아지풀에도, 소원을 담은 돌들에도 눈이 살포시 내려앉아있는 걸 발견하게 된다.



그렇게 찬찬히 걷다가 발길이 멈춰 선 곳은 한 여인과 뱀이 서로 바라보고 있는 모습의 동상이다. 예나 지금이나 신분 차이가 나는 사랑은 힘들다. 당나라 태종의 딸 평양공주를 사랑한 청년이 있었다. 청년은 공주를 사랑한 죄로 죽게 된다. 죽은 청년은 상사뱀으로 환생해 공주의 몸을 칭칭 감아 버린다. 태종은 공주의 몸에서 상사뱀을 떼어 내려고 갖은 방법을 써보지만 효험이 없었다. 신라의 영험한 사찰에서 기도를 드려보라는 노승의 권유에 따라 공주는 사찰을 순례한다.      



그러다 이곳 청평사까지 오게 되었다. 이곳에서 비로소 상사뱀은 공주 몸에서 떨어진다. 공주가 법당에서 기도를 올리는 사이 상사뱀은 죽게 된다. 공주는 그의 극락왕생을 빌며 오랫동안 이곳에 머물렀다고 한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다시 동상을 보았다.



죽어서도 그녀 곁을 떠나지 못하는 그, 죽은 그를 잊지 못하는 그녀가 마음을 시큰하게 했다. 그리운 사람을 다시 한 번 떠올리는 시간이다. 그러면서 나도 누군가에게 그리운 사람으로 남아있을까 생각해본다.      



청평사에 도착했다. 눈 오는 사찰을 직접 경험해본 건 처음이다. 귀한 경험이다. 감사했다. 청평사는 고려 광종 24년에 창건되었다. 1,000년 이상을 이어 온 선원이다.



이곳에 많은 학자와 문인이 머물렀다. 특히 청평사를 세 번째로 중창한 고려시대 학자 이자현을 빼놓을 수 없다. 그가 조성한 영지를 비롯해 곳곳에서 그의 자취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높은 벼슬을 버리고 이곳에 와서 소박하게 살았다고 한다. 스스로의 낙이 무엇인지 알아야 함을 일깨워준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삶이어도 내가 행복하지 않다면 의미가 없다는 걸 다시 느끼게 한다.



지금도 좋은 직장을 그만두고 새로운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뉴스가 된다. 모든 걸 내려놓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그런 용기를 낸 것만으로 대단한 사람으로 여긴다. 사실 대단할 건 없다. 자기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를 좀 더 일찍 발견한 사람들일 뿐이다. 큰 용기를 내서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번 것이다. 그 시간을 통해 나를 알게 되고, 내가 원하는 삶을 찾게 된 것이다. 꼭 모든 걸 내려놓을 필요는 없다.


하루에 조금이라도 나를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 것. 그것이 시작이다.       


여행 꿀팁

1. 청평사 주소 : 강원도 춘천시 북산면 오봉산길 810 청평사    

2. 요금은 성인 2,000원, 중고생 및 사병 1,200원, 어린이 800원이다.  


*이 글은 현재 동아사이언스에서 연재 중이기도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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