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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함의 선물: 뉴질랜드에서 찾은 여백

오늘도 어김없이 달뜨고 해지네. 어제와 다름없어 답답해지네

by 키위 몽상가

뉴질랜드에서 만난 많은 한국인들이 이곳 삶에 대해 "지루하다"고, "재미없다"고 말한다. 사실 세계에서 가장 고립된 나라 중에 하나. 인구랍시고는 고작 오백만. 인구면에서 부산 인구보다 조금 더 큰 나라. 이런 나라에 세계의 최신 트렌드들이 앞다투어 오고 세계 최대의 시설들이 많다면 그것이 더욱 이상할 것이다. 나 또한 전적으로 그 "지루하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지만, 그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왜 그런지 대충 이해가 간다.


지루함, 인식의 문제

지루함은 단순한 불만이 아니라, 우리 인식의 산물이라 생각된다. 사전적 의미로 지루함이란 특별히 할 일이 없거나 흥미를 잃어 따분하고 싫증을 느끼는 감정 상태로 정의 된다. 핵심은 이것이 지극히 주관적인 감정, 개인의 느낌이라는 점이다. 결국 지루함은 결국 나의 인식이며, 인식은 스스로의 선택이다. 내가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세상은 다르게 보일 수 있다. 그렇다면, 좀 더 긍정적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더 행복하지 않을까? 더 나아가 행복을 발견할 수도 있지 않을까?


물론, 쉴 틈없이 휘황찬란한 광고판이 번쩍이는 한국 도심에 비하면 이 곳은 도심마저 지루해 보인다. 하지만 내겐 그 단조로움이 주는 여백이야말로, 새로운 가능성을 채워나갈 기회를 주는 듯하다.
IMG_7946.JPG 출근 시간의 오클랜드 시내 번화가



문 밖은 액티비티의 천국

Best_Things_to_Do_in_New_Zealand’s_North___South_Islands.png Captured from https://mustdonewzealand.co.nz/

이곳에서 지루함을 느끼는 대신, 나는 밖으로 나간다. 뉴질랜드는 액티비티의 천국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무한한 놀이? 들이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준다. 트레킹, 카약, 서핑, 윈드서핑, 캠핑, 사냥, 낚시 등등 정말로 다양하다. 내가 주로 하는건 트레킹과 패들보딩이다.


오클랜드 시의회 웹사이트에 250개가 넘는 산책로가 소개되어 있다. 초보자도 쉽게 걸을 수 있는 길에 백만 불짜리 풍경이 펼쳐지는 곳도 많으니... 그야말로 트레킹의 천국이다.


나는 가끔 스트레스 받을 땐 패들보드 들고 바다로 간다. 잔잔한 바다 위에서 노를 저으며 바람을 느끼는 순간, 세상이 새로워지고 스트레스도 어느새 날아간다 (요즘은 좀 시들시들 해졌지만..).

IMG_0497.jpg 나의 스트레스 해소약 - 패들보딩


단순한 도전을 넘어, 삶의 전환점이 되는 순간

내게 액티비티가 단순한 지루함을 벗어남을 넘어 삶을 돌아볼 기회를 주기도 한다. 오클랜드 하버 브리지 위에서 뛰어내린 번지점프는 내 인생의 전환점과도 같은 경험이었다.

AJH-AB-20190122-006-001-0004-Camera 3.jpg 나는 날았다. - 오클랜드 하버브릿지에서 번지점프


조금 뜬금없지만, 내 생각엔 사람은 죽는다는 생각을 해야 비로서 삶의 의미를 좀 더 깊게 생각해 볼수 있는것 같다. 삶이란 무엇인가? 라는 어려운 주제를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쩌면 조금은 더 단순한 죽음이 무엇인지로 부터 접근하는 역발상적 접근법이다. 예를 들어, 사람들이 죽음 체험으로 관에 들어가기도 해봄으로써 삶의 소중함을 알아가는 식의 방법 말이다. 나에게 이 번지점프가 도전과 난관에 대한 의미를 생각하게한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된것 같다. 아찔하게 높은 다리 위에서 뛰어 내린 뒤로는, 힘이 들고 지칠 때면, "저 위에서도 뛰어 내렸는데, 이까짓 거...." 라고 자신을 다독인다.


자세히 읽어보거나 그의 생각을 들어본 적은 없지만, 유재석씨가 국민MC로서 바뀌게되는 큰 계기 중의 하나가 뉴질랜드와서 번지점프를 하고 난 뒤가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해본다. 겁쟁이에 조금은 겸손하지 못한 캐릭터였던 그가... 어느날 갑자기 국민적 사랑을 받는 진행자가 되기까지 분명 무엇인가 큰 내적 변화가 있었을 것이다.

20130818022417_336188_400_573.jpg https://www.etoday.co.kr/news/view/778482


뉴질랜드의 삶이, 혹은 자신의 삶이 지루하게 느껴진다면,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신호가 아니라 '새로운 것을 채워 넣으라'는 마음의 소리가 아닐까? 조심스레 생각해 본다. 그 마음의 소리를 무시해 버릴지, 아님 무언가를 채우려고 할지 그 선택은 오롯이 자신의 몫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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