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학교라는 문턱 그것을 넘어서면서부터 - 인생은 아름다워
나는 한국과 뉴질랜드, 두 나라에서 각기 다른 전공으로 대학 생활을 경험하였다. 이 글은 내가 겪은 두 번의 학부 경험 중 '입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지극히 개인적인 회고록이다.
본론에 앞서 한 가지 전제를 두고 싶다. 우리는 저마다의 환경과 경험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시간의 흐름 속에서 기억은 조금씩 변하기도 한다. 따라서 이 글은 객관적 사실보다는 나의 '경험과 느낌'에 기반한 이야기라는 점을 미리 말해둔다.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내 배경을 잠시 소개한다. 나는 20년 전, 한국의 수도권 대학에서 체육 관련 학과와 경영학을 복수 전공했다. 그리고 만 30살에 뉴질랜드로 건너와, 프로그래밍 경험이 전무한 상태로 IT 학부 과정을 다시 마쳤다. 완전히 다른 시기, 다른 전공, 다른 신분으로 두 나라의 대학을 경험한 셈이다.
20년 전 내가 경험한 한국 대학은 분명 '좁디좁은 바늘구멍' 그 자체였다. 수능이라는 거대한 벽을 넘어 그 구멍을 통과해야만 했으니까. 그 당시 선생님들은 "고3 시절 한 시간의 투자가 몇십 년의 미래를 좌우한다"라며 달리는 말에 채찍질을 했다.
반면, 30대에 마주한 뉴질랜드 대학의 문은 '활짝 열린 광장'처럼 느껴졌다. (물론 내가 유학생 자격이라 더 수월했는지는 모르겠다.) 고등학교 성적증명서와 자기소개서. 한국의 입시 전쟁을 생각하면 허무할 만큼 단출한 서류만으로 조건부 입학 허가를 받았다. 물론 의학, 법학 등 경쟁이 치열한 전공은 조건이 훨씬 까다롭지만, 적어도 내가 입학한 IT 학과를 포함한 일반적인 전공들은 문을 활짝 열어두고 학생을 기다리는 듯했다.
하지만 이 넓은 광장에도 '문지기'는 있었다. 유학생인 나에게는 바로 '영어'였다. 다행히 이 문지기는 원어민 수준의 유창함이나 현란한 글쓰기 실력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저 "이 학생이 강의라는 마라톤을 완주할 최소한의 체력(영어 실력)은 갖추었는가?"를 확인하는 '최소한의 허들(hurdle)'에 불과했다.
당시 내가 입학하기 위해 필요했던 점수는 IELTS 아카데믹 6.0이었다. 비즈니스 영어를 다루는 토익(TOIC)과 직접 비교는 어렵지만, 보통 토익 780점 내외를 이와 비슷하게 본다. 토익 800, 900점대를 흔히 이야기하는 한국 학생들에게 아주 넘기 힘든 장벽은 아닐 수도 있다.
이렇게 입학의 문이 넓은 데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첫째로, 한국과 달리 뉴질랜드의 대학 진학률은 약 40~50% 수준으로 그리 높지 않다. 대학을 가지 않아도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는 사회 분위기가 바탕에 깔려있다. 흥미로운 점은, 교육을 마친 졸업생의 90% 이상이 직업을 찾는다는 통계다.
정부는 강력한 노동 시장과 우수한 교육 시스템을 그 이유로 꼽는다. 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낮은 대학 진학률로 인한 '낮은 취업 경쟁률'도 한몫한다고 본다. 심지어 '호주로의 두뇌 유출'도 이 현상을 부추긴다. 정부 지원(첫해 학비 면제, 학자금 대출)으로 학위를 받고, 뉴질랜드에서 몇 년 경력을 쌓은 뒤 임금이 더 높은 호주로 이주하는 젊은이들이 많다. 그러니 기업 입장에서는 늘 인재가 부족할 수밖에 없다.
대학 간의 서열 의식이 덜한 것도 이유다. 뉴질랜드에는 8개의 국립대학과 여러 직업기술대학(Polytechnic)이 있지만, 적어도 내가 IT 업계에서 느끼기에, 취업 시 '어느 대학을 나왔느냐'가 한국처럼 당락을 좌우하는 결정적 요인이 되지는 않는다.
물론 이런 사회 현상만으로 넓은 입학의 기회를 다 설명하기는 어렵다. 나는 이 배경에 '평등'을 중시하는 뉴질랜드의 국가적인 철학이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뉴질랜드는 여성에게 세계 최초로 투표권을 준 나라이며, 기존 원주민이 살고 있는 지역을 점령하며 태어난 여타 나라들과 달리 원주민인 마오리족과 '동거'를 하고 있다. 마오리어는 영어와 더불어 이 나라의 공식 언어 중 하나이며, 어느 공식 행사에 가든 마오리 예식으로 행사를 시작하고 마친다.
이런 모습은 이 나라가 '평등'을 얼마나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지 말해주는 대목이다. 어쩌면 더 많은 사람에게 배움의 기회를 주려는 이 넓은 입학 시스템 역시, 모두에게 공정한 출발선을 주려는 그들의 철학이 반영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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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이민 10년 시리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