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3대 노을 명소, 글로벌 기업의 메카, 동남아시아의 샐러드 볼이자 영어 교육의 중심지. 이 같은 표현들은 모두 한 국가를 가리킨다. 바로 '말레이시아’라는, 서른 살 인생에서 변환점의 포문을 열어준 나라다. 생애 동남아시아를 방문해본 적도 없는 내가, 동남아시아 국가 중에서 언젠가 막연하게 여행하고 싶은 말레이시아에서 직장 생활을 하며 제2의 삶을 영위하게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서울의 한 모바일 큐레이션 콘텐츠 회사에서 직장 생활을 그만둔 지 햇수로 2년, 대학원생 때 잠시 몸담았던 시 연구원으로 다시 돌아와서 하루살이 인생처럼 보수를 받게 된 지는 약 6개월이 되어가던 2019년 어느 쓸쓸한 가을날이었다. 불합격의 고배를 연속으로 마시며 취업의 문턱에서 기웃거리는 시간이 지속되다 보니 어느새 자존감은 깜깜한 땅굴에서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지하까지 꺼져갔고, 삶의 의지는 낙엽처럼 바스러져 갔다.
시간은 책장을 넘기듯 가을에서 겨울로 고개를 숙였다.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던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대학원 전공을 살려 말레이시아에 위치한 글로벌 회사의 광고 지원팀에 입사 지원서를 넣었다. 이제 더 이상 국가는 중요하지 않았다. 국내든 국외든 어디라도 상관없으니 제발 취업만 되어 남들처럼 제대로 된 직장을 다닐 수 있게 해달라고 하늘에 빌었으니 말이다.
모순되게도 20대 때는 목이 쉬어라 해외 취업을 외쳤던 나였다. 어떻게든 해외로 나가려고 간이고 쓸개고 다 줄 것처럼 별의별 방법을 찾았다. 그러나 오메가 3으로 영양 보충이 필요한 현재의 나는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철석같이 믿고 열정을 불사르는 스무 살 학생이 아니다. 그때의 나는 서른을 넘긴 지금과 달라서, 매가리는 없어도 입에 풀칠만 하면 될 것 같아서,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하고 싶어 고향을 벗어나지 않으려고 했건만. 그렇게 이루고 싶던 20대 때의 꿈이 지금은 가장 멀리하고 싶어 버린 선택지가 되었는데, 선택의 기로랄 것도 없이 해외로 이력서를 넣었다는 것이 나를 놀라게 했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 위치한 글로벌 회사의 광고 지원팀으로 취업하기까지 1차 이력서, 2차 영어 테스트, 3차 인사팀 면접, 4차 실무진 면접, 총 네 가지 전형이 진행되었다. 1차에서 4차까지 진행되는 데에는 약 3주가 소요되었다. 간절한 마음이 통했을까? 인사팀 직원으로부터 “합격”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영영 못 찾을 것 같던 애착 인형을 뜻하지 않은 곳에서 발견한 어린아이처럼 펑펑 울었던 순간은 여전히 눈에 선하다.
그렇게 해서 “다시 시작하자”라는 마음으로 부푼 꿈을 안고 쿠알라룸푸르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6시간의 비행이 끝나자 두 발은 가볍게 말레이시아 땅을 디뎠다. 몇 시간 전에도 추위에 떨며 서늘한 입김을 내뱉었는데, 여름 나라에서 후덥지근한 열기로 땀을 주르륵 흐르니 “드디어 말레이시아에 도착했구나”를 체감했다. 모두가 나에게 “Selamat Datang(어서 오세요)”라며 환한 미소로 인사했다. 앞으로 2020년은 마냥 꽃길만 걸을 듯한 생각에 벚꽃 같은 설렘이 온몸을 감싸 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