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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녜 Jun 15. 2021

그럴 수 있지

마법의 주문

사람은 다 제각각이다. 얼굴부터 발끝까지 생김새부터 지문조차 사람마다 다르니 자라온 환경에서 형성되는 성격, 가치관 또한 차이가 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그래서인지 수세기 동안 ‘나’를 기준으로 세상을 경험하며 본인과 다르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경계하는 것은 인간의 습성으로 자리 잡혔다.


  다행히도 교육으로 “다름을 인정”하는 사회성이 각자에게 체화되어 세상은 다양성을 인정하는 무지개가 되어가고 있다. 이 같은 변화에 나도 나이를 먹으면서 동참하기 시작했다. 바로 “그럴 수 있지”라고 스스로에게 마법의 주문을 걸어서 상대방을, 나아가 세상을 이해하려고 함으로써 말이다.


  그 시작은 나와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관계를 일방적으로 습관처럼 끊었던 20대 후반 때부터였다. 서울서 다니던 직장에서 한 직장동료 때문에 심적으로 스트레스를 꽤나 받았던 적이 있었다. 사적으로 아는 사이라면 관계의 끈을 이미 자르고도 남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누구나 그렇듯 회사 생활이라는 게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었기에 결국 혼자만 끙끙 앓다가 직장 상사에게 고민을 털었다.


  직장 상사는 마냥 내 편만 들지 않았다. 다만, “그럴 수 있지”, “네가 그렇게 느낄 수도 있겠다”, “참 많이 힘들었을 텐데 나에게 고백해주어서 고마워”라고 말하는 그분에게 위로를 얻었다. 특히 “그럴 수 있지”라며 덤덤하게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하는 그분에게서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그동안 나와 다르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배척하곤 했다. 그 사람이 범죄를 저지른 것도, 누군가를 상처 준 것도 아니었다. 심지어 상식밖에 행동을 하지도 않았다. 단지 가치관이 다른 것이었는데, 그저 성격이 나와 맞지 않았던 것이었는데, 마치 그가 열등한 것처럼 자만하게 행동했던 나 자신이 “그럴 수 있지” 한마디에 그렇게나 부끄러웠던 적이 없었다.


  그때 이후로 습관처럼 "그럴 수 있지"라고 내뱉었다. 사람마다 사연이 있다는 걸 '자각'한 상태에서 누군가를 잣대로 판가름하기 전에 "나였으면 어땠을까?" 마음속으로 질문을 던지며 상대방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행동을 실천으로 여러 차례 옮기다 보니 "그럴 수 있지"라는 마음가짐은 인간관계에서도 선한 영향력을 미쳤다. 한때 소원했던 친구와의 우정을 다시금 회복하게 했으며, 현재 진행형인 인간관계를 보다 유연하게 유지할 수 있는 윤활제가 되었다.


  “그럴 수 있지”는 세상을 바라보는 자세를 송두리째 바꾸게 하는 주술이기도 하다. 이전에는 세상이 그저 원망스러웠다. 간절히 원하는 걸 결국에 노력으로 이루었어도 늘 경제적인 이유로 포기하게 만드는 것이 '나의 세상'이었고 그 세상은 지금도 여전하다. 공든 탑이 무너졌을 때 “너가 부족해서가 아니야.”, “너는 최선을 다했어.”, “그저 그건 너의 것이 아니었던 거야.” 하며 충분히 실패해도 괜찮다며 스스로에게 용기를 던질 수도 있게 되었다. 이 같은 다짐이 반복되다 보니 세상을 향한 앙상한 가지는 이파리가 나기 시작하며 완연한 봄을 맞이하였다.


  나에게 행복의 주문은 "그럴  있지"이다. 사회생활이든, 인간관계든, 무엇인가 나를 짓누를 때마다 "그럴  있어" 하며 마음을 정리한다. 물론 이것이 항상 통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스스로에게 주문을 거는 이유는 여생에서 후회하고 싶지 않아서다. 주문을 외치다 보면 어느샌가 행복은 마음의 가장자리에 안착하게 되기 마련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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