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이 태도가 된다면
결국 자아를 삼켜버리는 행위
기분은 인간이 통제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애초에 컴퓨터와 같은 기계는 '정서'라는 것이 없는데, 기분은 사람이 유일하게 사유할 수 있는 것이다. 감정을 마음대로 조절할 순 없어도, 기쁨, 슬픔, 공감, 화남으로 스스로를 표출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인간에게 허용된다. 중요한 점은 누구도 본인의 감정을 행동으로써 남에게 치환하는 것이 어리석다는 점이다. 기분이 태도가 되는 찰나, 나 '자신'을 놓아버리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말레이시아에서 직장 생활을 하며 얻은 것과 잃은 것이 있다. 전자는 감사하게도 새로운 환경이고, 후자는 안타깝게도 나 '자체'이다. 비좁은 단칸방에서 아등바등 세를 내며 기거하던 옛날보다 널찍한 콘도에서 소위 '커리어우먼'으로 사는 게 무슨 의미일까? 속은 문드러지는데 말이다. 남들은 나를 해외 취업에 성공한 '능력자'라고 칭하지만, 사실 이곳에서 나는 그저 "빛 좋은 개살구"일 뿐이었다. '나'라는 정체성을 빼앗는 데 일조한 것은 일이었으니 말이다.
마케팅으로 경력을 쌓는 사람이라면 G사 광고 플랫폼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G사는 누구에게나 꿈의 직장이기에 G사의 프로젝트를 참여하는 것은 입사 초반까지만 해도 크나큰 자부심이었다. 내가 다니던 회사는 G사의 프로젝트에서 G사 광고 플랫폼을 담당하는 곳이었으며, 특별히 한국 시장을 공략하여 광고주의 니즈를 충족시키는 게 내 주된 임무였다.
이곳에서는 광고 전문가로서 마케팅 지식과 고객 만족을 위한 감정 노동을 동시에 요구했다. 특히나 한국의 특성상 "손님은 왕이다"라는 왜곡된 서비스 정신으로 간이고 쓸개고 다 바칠 것처럼 업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럼에도 노동자로서 기본적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것이 아이러니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갑질에 채찍을 맞다 보니 '긍정' 열매만 맺던 마음속 나무는 어느새 뿌리까지 썩어서 나무꾼이 도끼로 살짝 찍어내려도 바사삭 무너질 지경까지 이르렀다. 그렇게 속은 계속해서 곪았고, 가장 상처주지 말아야 할 사람을 '감정 쓰레기통'으로 취급하는 상황까지 다다랐다. 목소리는 날이 섰고, 행동은 거칠어졌다. 잘못한 사람은 타인인데 애먼 화를 소중한 연인에게 풀다니. 불행하게도 마침내 기분이 태도가 되는 지점에 당도하게 되었다.
기분이 태도가 되었을 때 비로소 정체성이 사라지고 있다는 생각에 베개가 젖도록 눈물을 쏟고 나서야 정신이 번뜩 차렸다. 그리고 소중한 사람을 다치게 하지 않기 위해, 누구처럼 하찮은 인생을 살지 않기 위해, 무엇보다 살기 위해 퇴사를 결심했다. 더는 바람에 쉬이 흔들리는 촛불처럼 요동치고 싶지 않았다. 물론 퇴사를 결심하고 그것을 실천으로 옮기기까지 몇 개월이 소요되었다. 다만, 퇴사를 결심하던 그때 이후로 감정은 더 이상 태도를 지배하지 않았다.
감정 기복은 날씨와 같다. 어떤 날에는 화창하다가도, 다음 날에는 우중충하다. 다행히도 햇빛이 뜨거울 때는 선글라스를 끼고, 비가 내릴 때는 우산을 쓰는 것처럼, 태도는 기분을 대처할 결정권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결정권자는 바로 본인이다. "매너는 사람을 만든다"는 한 영화의 유명한 대사처럼 결국 기분이 태도를 잡아먹지 않기 위한 노력은 개인에게 주어지는 수련의 연속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