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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녜 May 25. 2021

한여름의 크리스마스

I am Dreaming of A Summer Christmas

크리스마스 하면 포근한 함박눈이 내리는 창밖 풍경, 마시멜로가 가득 올라간 달콤한 코코아 한 잔, 섬유유연제 향기로 보송보송한 테디베어 담요, 그리고 TV에서 밤새 상영하는 추억의 영화 <해리포터> 시리즈가 떠오른다. 크리스마스는 겨울바람으로 손발이 꽁꽁 어는 연말에 어린아이의 따뜻한 숨결로 마음이 사르르 녹는 마법의 날이다. 이렇듯 연말을 표상하는 크리스마스가 말레이시아에서는 두꺼운 옷을 벗어 사뭇 다르게 다가온다. 말레이시아에서 크리스마스는 야자수 아래서 시원한 과일 주스를 마시며 가벼운 옷차림으로 휴일을 즐기게 하는 '한여름의 크리스마스'다.


  말레이시아 날씨는 연중 따사로운 햇살이 머금는, 가끔은 먼지가 싹 씻기는 스콜이 내리지만, 일상에 이미 젖어든 태양열을 적응할 수밖에 없는 천기(天氣)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일까? 젖 먹던 힘을 다해 째깍거리는 시곗바늘을 바라보는 게 무안해질 정도로 한결같은 날씨로 이곳에 있으면 시간이 멈춘 듯하다. 이 같은 말레이시아에서 은은한 노란빛 조명과 갖은 장식으로 화려하게 꾸며진 대형 크리스마스트리가 쇼핑몰 정중앙에 배치되어 있을 때 연말이 다가왔음을 체감한다.


  사실 뉴질랜드에서도 크리스마스 시즌을 경험해본 적이 있다. 하지만 뉴질랜드는 사계절이 꽤나 뚜렷하기도 하고, 그때 당시에는 크리스마스 이전에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기에 겨울의 크리스마스로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그래서인지 말레이시아에 오자마자 맞이했던 첫 번째 크리스마스는 의미가 남달랐다.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말레이시아 땅을 밟았기에 한여름의 크리스마스는 동화 속 주인공처럼 해피 엔딩만 가득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있었다. 다만, 누구나 알듯이 해피 엔딩은 동화 속에만 존재한다. 쌉쏘롬한 카카오 열매처럼 이곳에서도 쓰디쓴 순간을 매번 맛보고 있다.


  그럼에도 말레이시아에서 크리스마스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추억이 켜켜이 쌓여 있어 외롭지 않았던 날이라고 말하고 싶다. 글로벌 트레이닝 때 사귄 외국인 친구들과 땀을 뻘뻘 흘리며 고소한 대만식 토스트를 먹어보았고, 그다음 해에는 난생처음 아기자기한 장식들을 구매하여 집에서 크리스마스트리를 직접 꾸며보았으니 말이다. 그동안 혼자서 외롭게 지냈던 지난날의 크리스마스와는 달리 이곳에서는 누군가와 함께 뜨거운 크리스마스를 보내며 평생 공유할 만한 추억이 생긴 것이다.


  말레이시아에서 보내는 크리스마스는 겨울마다 무심하게 두르는 보드라운 목도리 같지는 않아도, 무더운 여름날에 가끔씩 당기는 달곰하고도 시원한 메로나와 같다. 앞으로 크리스마스 하면 뙤약볕 아래서 배가 고파 친구들과 허겁지겁 먹었던 대만식 토스트, 정성을 들여 처음으로 가꾸어본 사랑스러운 나의 크리스마스트리, 그리고 무더위를 피해 들어간 쇼핑몰에서 만나는 온화한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심상으로 남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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