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세상에서 하나의 생명체로 태어난 것은 본인의 의지가 아니더라도 그 이후의 삶은 선택에 따라서 갈림길이 생긴다. 어떤 길을 갈지 결정하는 것은 오롯이 개인의 몫이며, 한 번의 선택으로 미래가 달라질 수 있다는 부담은 평생 짊어야 할 과제로 남는다.
그런데 어떠한 선택으로 인생의 방향성이 달라졌을지라도 오랜 시간이 지나서 그동안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면, '선택(Choice)'은 '우연(Coincidence)'이라는 이름으로 찾아와 '운명(Destiny)'을 결정짓는다. 특히나 요즘 같이 혼란스러운 시국에서 더더욱 이 같은 생각이 믿음으로 확고해진다.
말레이시아에서 생활을 영위하게 되었던 시발점은 2019년 어느 가을날, 채용 전문 포털 사이트에서 우연히 발견했던 공고였다. 한 번 각인된 입사 공지는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결국 우연은 선택으로 바뀌었고, 그때의 결정은 상상하지 못했던 뜨거운 여름 나라에서 새로운 세상을 펼쳐주었다.
사실 이곳에서 여러 번의 고비를 맞이했다. 그것은 바로 늘상 겪는 직장 자체였다. 이 나라에 온 지 3개월째. 고된 감정 노동이 쌓이고 쌓여 아무도 모르게 사라져 버릴까 했던 찰나였다. 그때 기막히게도 락다운이 시행되었다. 말레이시아 정부의 단호한 결정은 재택근무를 할 수 있는 기회로 전환되었고, 얼렁뚱땅 시작된 재택근무는 잠시나마 감정 소모에서 벗어나 일의 능률을 올리게 하는 촉진제로 작용하였다. 그렇게 해서 탈출하고 싶던 욕망은 가까스로 넘겼고, '잠수'가 아닌 '승진'이 또 다른 선택이 되었다.
그러나 재택근무를 하다 보니 공과 사의 경계가 무너졌다. 심신이 편해야 할 공간은 광고주의 문의를 전화로 받는 시점부터 스트레스로 가득해졌고, 이곳이 사무실인지 집인지 헷갈리는 지경까지 오게 되었다. 퇴사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데, 일을 그만두는 순간 말레이시아에서 더는 거주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그저 고구마를 백 개 먹은 것처럼 답답하기만 했다.
그럴 때마다 이곳에서 만난 '인연'의 응원으로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서인지 사랑하는 사람이 하필이면 말레이시아에 있어서, 그래서 이들을 만나려고 말레이시아를 향한 여정이 '선택'을 넘어서 '운명'으로 자리한 것일까 하는 질문이 머릿속에서 맴돈다. 어쩌면 답은 이미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연과 선택은 영어로 각각 Coincidence, Choice라고 불린다. 흥미롭게도 두 단어 모두 'C'라는 알파벳으로 시작되는데, 사람마다 C는 다르게 읽힌다. 나에게 C는 '우연'으로 읽히다가 이것을 실행으로 옮기면 '선택'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래서 마침내 우연은 선택이 되고, 수많은 선택은 영속되어 인간의 삶을 '운명'이라는 이름으로 완전하게 한다.
나이를 먹을수록 인생은 뒤엉킨 실타래처럼 잘 풀리지 않는 것 같다. 그럼에도 우연으로 찾아온 과거의 선택은 서로가 얽혀 지금의 '나'를 만들었으며, 그 선택이 최선이었다는 것을 회고하게 한다. 그리고 한 사람의 삶이 얼마나 아름다웠음을 깨닫게 한다. 푸쉬킨의 시 <삶>처럼 "모든 것은 순간적인 것, 지나가는 것"이며, "지나가는 것은 훗날 소중"한 것으로 귀결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