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OO 광고 지원팀의 OOO 매니저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말레이시아에서 제일 많이 입 밖으로 내뱉던 말은 고객이 누구인지에 따라 온종일 눈물이 마르지 않는 저 문장이었다. 출구가 없을 것 같던 어두컴컴한 터널을 이제 막 지나서 한줄기 빛으로 마음의 위로를 얻을 줄 알았는데, 이것이 크나큰 착각이었다는 것을 두 달간의 꿀 같던 트레이닝이 끝나고 막상 일하기 시작하게 되어서야 각성하였다.
초반에 합류했던 팀은 대행사나 대기업을 상대하는 지금의 팀과는 달리 개인 광고주를 상담하는 곳이었다. 광고주들 대부분은 친절하였으나 '일부'가 소위 말하는 '진상'이었으며, 수화기 너머로 짜증 섞인 목소리를 많은 비중으로 차지하여 들어야 했던 직원은 바로 나였다. 평생 욕 한 번 하지 못했던 내가, 심지어 "짜증 난다"라는 표현이 싫어서 "짜장면"이라고 말했던 내가 OO 광고 지원팀에서 일하게 된 이후로는 기갈나게 육두문자를 날릴 수 있게 된 것도 이곳에서의 직장 생활 때문이다.
사실 몸을 담고 있는 프로젝트는 글로벌 단위의 부서로 광고 데이터를 해석하고, 광고를 최적화하며, 기술적인 문제 또한 담당하는, 다시 말해서, 해당 플랫폼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반드시 있어야 광고주들의 니즈를 충족시키는 고도한 수준의 일을 지원해주는 곳이다. 그러나 이곳에서 일하는 것은 마치 쓰라린 고통과도 같다. 광고 전문가로서 소양은 갖추어야 하면서도 고객의 만족을 위한 서비스까지 제공해야 한다. OO 광고 지원팀에서 근무하는 것은 '감정 노동자'가 되어 '감정 자본주의'를 이행하는 것과 같다.
책 <감정 자본주의>에서는 감정이라는 것이 현대에 들어서 우리가 알게 모르게 자본으로 교묘히 활용되고 있다는 점을 말해준다. 특히 책에서 '소통의 에토스'가 언급되는데, 이것이 공감을 강요한다는 점에서 과연 현대 사회에서 소통이 말 그대로 진정한 소통인 것인지 아니면 자본을 기반으로 한 상업적이고 피상적인 교류인 것인지를 헤아리게 한다. <감정 자본주의>를 회귀하면서 내가 이곳에서 수행하고 있는 것은 '광고와 연관된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을 제공하는 것이 아닌, 갑질을 자행하는 광고주의 기분을 어르고 달래는 일인가?' 하는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자본을 이용하여 감정적으로 갑을관계를 선점하려는 소수(라고 말하고 싶은) 사람들 때문에 '감정 노동자'라는 단어가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목소리로 고스란히 전달되는 감정이 한 노동자의 하루를 좌지우지하며, 하루의 연속이 그 사람의 삶 자체를 통째로 흔들어 버린다.
결국 감정 노동자로 일하면서 지옥이 눈앞에 펼쳐졌고, 말레이시아로 오게 된 것이 '후회'라는 꼬리표를 붙일 만큼 인생의 오점으로 다가왔다. 눈을 깜빡거리면 그만둘 수 있는 시기에 도달하여 이곳을 벗어날 수 있었으면 했다. 혹은 어느 날 무단으로 결석하여 바리바리 짐을 싸고 무작정 말레이시아를 떠나 잠수를 타고 싶기도 했다. 직장도, 이 나라도, 그저 모든 것이 괴로웠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사무실에서 일하게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작스레 재택근무를 시작하게 되었고, 이것이 직장 생활을 그나마 오랫동안 할 수 있게 한 트리거가 되었다. 아니, 어쩌면 '생판 얼굴도 모르는 사람에게서 기분을 결정짓게 하지 말자' 하는 마음가짐으로 말레이시아에서 버틸 수 있는 힘이 조금씩 생긴 듯싶다. 그럼에도 어떤 방식으로든 '감정 노동자'로 영위하는 것은 참으로 씁쓸한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