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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녜 Nov 15. 2024

"어이구, 귀여워! 바보 같아."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어린아이가 되는 이유



오녜 씨는 형제나 자매가 어떻게 되세요?”


“저 위로 언니가 한 명 있어요.”


“어머, 저는 오녜 씨가 첫째인 줄 알았어요!”



  스무 살 때부터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늘 듣던 질문과 반응이었다. 어찌 된 영문인지 몰라도 만나는 사람마다 그랬다. 그도 그럴 것이 질풍노도의 십대를 보내고 나서부터 경제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자립이 필요했다. 그것은 타의에 의한 결정이었다. 어찌 보면 스무 살의 나는 무해하고 순진한 여대생이었다. 그럼에도 어른이 되려고 바득바득 나 자신과 싸웠다. 사랑을 갈구하는 것보다 사랑을 줘야 했다. 누군가에게 위로를 받기보다 위로해 주는 대상이 되어야 했다.


  라이언을 만나기 전까지 두 번의 연애에서 감정의 짐을 떠맡는 '가스라이팅'을 경험했다. 한 번이라도 눈물을 보이면 “이혼 가정에서 자란 내가 너보다 불행하니 이런 못난 나를 이해해야 하는 사람은 너야.” 또는 “나약해진 너의 모습에 실망해서 애정도가 10에서 5로 뚝 떨어졌어.”라며 나를 나무랐다. 그들은 늘 내가 강한 존재로 남아주길 원했고 힘든 내색조차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그렇게 인간관계에서 을이 되는 패착을 두었다. 그리고 ‘어른이 되어야 한다’는 압박은 삶을 옥죄였다.


  하지만 지금의 남편과 함께하면서 처음으로 ‘어른’이 아닌 나 자신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의 앞에서 내 진짜 모습을 드러내고도 사랑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그동안 버거웠던 갑옷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었다. 라이언 앞에서만큼은 언제나 최선을 다해야 하는 강한 존재가 아니라, 때로는 조금 유치하고 별것 아닌 일에도 삐치는, 작고 불완전한 내가 되어도 괜찮다. 라이언 앞에서 눈물 콧물을 쏟으며 펑펑 울거나 어린아이처럼 괜한 투정을 부려도 그는 항상 똑같은 반응을 보인다. 핑크빛이 감도는 눈길로 나를 부드럽게 어르고 달래며 말이다.



“어이구, 귀여워! 바보 같아.”





  그래서일까? 어느샌가 남편이 촌스럽거나 유치한 짓을 하더라도 그것이 마냥 귀여워 보인다. 라이언의 선한 마음을 닮고 싶어서 그의 행동 하나하나에 집중하여 애교스러운 순간을 포착한다. 커다란 눈에 눈곱이 끼어도, 붉은 입술에 밥풀이 묻어도, 시답잖은 농담에 낄낄거리며 온몸으로 박장대소해도 남편의 있는 그대로가 사랑스럽다. 남편은 나의 “귀여워”보다 “잘생겼어”라는 말을 선호하지만, 어쩔 수가 없다. 그가 곰돌이 인형처럼 귀여운걸!





  국어사전에서 형용사인 ‘귀엽다’는 “예쁘고 곱거나 또는 애교가 있어서 사랑스럽다”라고 정의된다. ‘귀엽다’를 설명하는 그 각각의 단어에 사랑이 깃들어 있는 셈이다. 라이언과 함께하는 시간 속에서 나는 그 ‘귀여움’의 의미를 깨닫는다. 그의 앞에서 한없이 작고 아이 같은 모습이 되어도 사랑받을 수 있다는 평온함과 따뜻함을 느낀다. 그렇게 있는 그대로 귀엽고 사랑스러울 수 있음을 알게 된 순간, 비로소 한 사람 곁에 편안히 머무는 법을 배운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유치하게 행동하고 서로에게 솔직해질 수 있다는 것은 사랑이 주는 특권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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