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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키위 Apr 11. 2023

참을 수 없이 가벼운 가치에 관하여

밀란 쿤데라 <농담>을 읽고

 <농담>에서 저자는 무겁다고 받아들여지던 가치들이 무게감을 잃고 가볍게 다루어지는 과정을 일련의 사건과 인물들의 태도를 통해 드러낸다. 도덕적이지만은 않은 주인공의 시선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는 사랑을 수단으로 사용하는 루드비크와 그 피해자 헬레나, 사상을 겉치레로 내세우는 제마네크, 종교를 명분으로 사용하는 코스트카와 그에 의존하는 루치에, 전통을 관습처럼 다루는 야로슬라프처럼, 각각의 가치를 상징하는 인물들을 언행을 빌려 사람들에게서 무게감을 잃어가는 가치들의 모습을 제시한다.


 무언가가 가볍게 다루어진다는 것은 곧 그것의 본질적 성질은 상실되고, 표면적 모습만이 개인들에 의해 편집되어 행해진다는 의미이다. 이는 현대사회의 여러 시사/정치적 사건들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종교를 이유로, 노동의 가치를 이유로, 불편을 이유로 행해지는 여러 사회적 운동과 성명 중 몇몇 움직임은 그것의 가장 내밀한 속성인 도덕, 평등과 같은 가치보단 명분과 손익을 그 목적으로 드는 경우가 있다. 해당 움직임이 어떤 목적성을 띠는지와는 별개로, 그것을 다루는 언론과 대중의 모습 또한 그들이 주장하는 바에 집중하지 않고 당장의 손해를 분석하기 급급하다.


 이러한 세태를 끊고, 우리 사회가 가치를 왜곡되지 않은 시선으로 직시하기 위해서는 무거운 가치를 기억하고, 문제의 원인이 그 가치의 부정에서 시작됨을 인지해야 한다. 예를 들어, 현재 논란이 되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지하철 점거 시위는 시민의 이동권을 침해한다는 점에서 비판의 여지가 있으나, 시위의 근본적 원인인 평등의 가치, 즉 ‘비장애인과 동일한 수준의 이동권 보장’이 제도적으로 지켜지지 않았음을 기억해야 한다.


 <농담>에서 제마네크와 같은 사상가가 마르크스가 역설한 민주주주의적 정서를 기억했다면, 루드비크가 루치에와의 연애에서 사랑이 섹스와 분리될 수 있음을 기억했다면, 야로슬라프가 전통의 부흥이 필수적이진 않다는 사실을 인지했다면, 코스트카가 종교적 사랑과 성적 사랑을 구분했다면, <농담>의 줄거리가 달라졌을지도 모르겠다. 어떠한 사회 문제이건, 비판과 검토의 화살을 표면적으로 보이는 무고한 이에게 돌리는 것보다, 지켜져야 할 가치를 훼손하고, 그 이름으로 부당한 폭력을 휘두르는 배후를 지목하는 것, 즉 사회 문제의 근원을 가치의 부정으로 해석하는 것이 가치를 허울처럼 가벼이 다루지 않고 보다 진중하게, 무겁게 다루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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